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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오독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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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오독과 편견

입력
2006.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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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이라는 게 오해와 착각으로 넘쳐나는 것이지만 견강부회와 억지가 지나치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한 신문칼럼의 '억지史觀'

며칠 전 책을 한 권 냈다. 오해가 있을 테니 제목은 말하지 않겠다. 1959년 이기붕의 집에 들락거린 사람들과 물품을 기록한 출입인명부에 관한 책이다. 이기붕은 1공화국의 2인자이자 부패와 권력의 오용으로 지목된 자이다.

이기붕가의 출입인명부는 1공화국의 정부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그러나 4ㆍ19 직전인 1959년 그해 한 권력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나는 처음부터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해가 내가 태어났던 해이기도 하고 이미 역사적으로 규정된 인물에 대한 선입견과 기록된 물품이 뇌물일지도 모른다는 상투적 의심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신문에서 제목으로 '이기붕 X파일'이라고 뽑았듯 그 집을 들락거린 사람들과 그들이 들고 온 물품의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쓰면서 역사적 선입견과 상투적인 호기심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더불어 역사를 기술하는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객관적으로 기술되는 역사가 가능한가 하는 의문과 함께 모든 역사가 주관적으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면 그 노정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 이기붕가의 출입인명부는 역사적 가치와는 별개로 역사를 해석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따라서 역사노트 형식을 빌린 책에는 출입인명부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매우 부분적이며 그 대신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주관적인 태도와 1959년의 문화사회적 상황을 묘사하는 게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이 문서가 '뇌물목록임을 철저하게 배제할 의도로 쓰여진 문서'라는 조심스런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웬걸, 몇몇 신문에 소개된 책의 내용을 보고 나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오로지 흥밋거리와 자극적인 부분만 골라내 기사화한 것은 어차피 저널리즘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이 책을 인용해 쓴 칼럼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오독을 넘어 역사왜곡 수준

그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 '이기붕 선물 목록'은 거꾸로 우리 살림살이가 그새 얼마나 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권력자 집 곳간에나 채워져 있던 과일·고기·해산물·음료수가 지금은 여느 서민 집 냉장고에 흔하디 흔하다. 이게 바로 천지개벽이고, 이 나라 민중이 땀 흘려 쌓아 온 대한민국의 성장사(史)다.

대통령, 총리를 비롯해 역사를 다시 고쳐쓰겠다는 이 정권 사람들은 빠짐없이 이 선물 목록을 읽고 음미해 보길 바란다." 아뿔싸! 도대체 책을 읽기나 했는지, 눈으로 읽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기관으로 읽는지 알 수가 없다. 역사를 곡해하는 수준은 책을 오독하는 수준을 능가한다. 천지개벽이 따로 없다.

김진송 목수ㆍ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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