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에 자립형사립고를 설립해야 한다”, “수월성교육 보완을 위해 자사고를 확대해야 한다”,“자사고를 20곳 정도로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강남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자사고를 확대하겠다”는 등 자사고의 확대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 14일 자사고의 확대를 사실상 백지화하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을 지원하는 공영형 혁신학교(협약학교)를 내년부터 시범운영하고 자사고는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하였다.
●시범운영·연구결과 긍정적 불구
그 이유는 자사고가 입시기관화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입장을 급히 번복하게 된 내면적인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금년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고, 여당 일각에서 자사고는 귀족학교라고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라고 하지 않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교육부 수장인 교육부총리가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도 없이 대통령과 정치권에 코드만 맞추려고 하는 것 아닌가.
고교평준화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그 동안 정부는 자율학교, 특성화고교, 특목고 등 새로운 형태의 고교를 설립토록 하였다. 자사고는 고교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의 일환으로, 재정여건이 건실하고 건학이념이 뚜렸한 사립고를 대상으로 하였다. 2002년부터 민사고, 상산고 등 6개교를 선정하여 3년간 시범운영한 후 그 결과를 평가하여 제도화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를 위해 한국교육개발원으로 하여금 ‘자립형사립고 시범운영 평가 연구’를 수행토록 하였으며, 교육부내에 설치된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로 하여금 시범 평가 보고서를 검토하여 자립형사립고 제도에 대한 정책방향을 제시토록 하였다.
교육개발원은 수업의 질이 개선되고, 다양화ㆍ특성화교육이 확대되고, 수월성이 제고되고, 사학운영 모형이 제시되었다고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도 시범운영 기간 연장, 시범학교 확대를 건의하였다. 더우기 한국교총이 지난해 10월에 3,4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5%가 자사고 확대실시를 원했고, 축소나 폐지 의견은 19.8%에 불과했다.
양 기관의 연구결과와 설문조사 결과가 매우 긍정적이었고, 교육부가 구성ㆍ운영한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도 시범운영 확대를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총리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교육부총리가 교육연구기관의 연구결과, 교직단체의 조사결과, 교육부 협의회의 정책건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믿을 수 있는가?
교육의 전문성은 법률로 보장한다고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래도 김부총리가 경제 전문가이기에 교육에 자율경쟁, 시장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교육의 수월성 추구를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경제적논리와 철학마저도 포기하고 있지 않은가?
●정권코드 맞추느라 소신도 포기
중국 상해에 9개의 국제학교가 설립ㆍ운영되고 있으며, 이 학교들은 중국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완전 자율학교이다.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질 국제학교에 대하여 등록금과 학생선발을 규제하고, 귀족학교라고 할 것인가? 우리 사립학교들은 송도의 국제학교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계 고교는 본래 대학입시 준비에 초점을 두어야하는 학교이며, 사립학교는 민영 기업체처럼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없어야 경쟁력이 향상되는 학교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사학을 평준화체제로 묶어 놓은 나라가 없다. 차제에 원하는 사학은 모두 자립형사립학교로 전환시키는 획기적인 정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윤정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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