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는 ‘콜레트’라는 이름의 편집 매장이 있다.
편집 매장이란 디자인이 예쁜 전자시계부터 향수, 손수건, 청바지나 고가의 드레스까지 매장 고유의 스타일 범주 에 드는 제품들을 원 스톱으로 꾸며 놓은 것을 말하는데, 요즘에야 국내에도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미 수년 전에 자리를 잡으며 전 세계 패션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콜레트에는 그런데 ‘워터 바(water bar)’, 즉 물을 골라 마실 수 있는 바가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미네랄워터를 구비하고 있는 콜레트 물 바는 ‘물’이 이제 엄연한 프리미엄 상품이자 여유의 상징이며, ‘어떤 브랜드의 물을 드세요?’라는 질문이 ‘어떤 와인을 좋아하세요?’와 같이 취향이나 ‘노는 물’을 구분해주는 잣대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 물
내가 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콜레트’가 아닌 ‘절’에서였다. 터질 것 같은 머리와 가슴을 쥐고 절을 찾는 내게 절집의 ‘물 맛’은 언제나 남달랐기 때문이다. 수덕사, 선운사, 대흥사, 수종사 등의 절에서 땀 흘리며 절 올린 다음에 마시는 물 한 모금은 고마운 맛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절마다 물맛이 다르다는 점. 어디는 좀 달달하고, 어디는 매끄러운 맛이 혀에 남는가 하면 어디는 약간 쌉쌀하고 어디는 미세한 탄산이 느껴진다. 물맛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나서는 등산을 할 때에도 반드시 약수터를 지나가는 코스를 택하게 되었다.
마이산의 물터에는 섬진강 물줄기가 시작 되는 지점이라 쓰여 있는데 물이 정말 맑다. 아차산에는 약수터가 여러 곳 나있어서 주민들과 아이들이 물터에 붐비는데 물이 정말 시원하고, 주왕산 물맛은 비릿한 철 맛이다.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찜질방에서 전라도 분인 할머님 한 분을 뵙게 되었는데, 그 분은 고로쇠 수액을 권하셨다. 하도 맛나게 드시길래 ‘할머님, 지금 뭐 드시는 거예요?’ 여쭈어 알게 된 또 하나의 물맛은 달고 진해서 흥미로웠다.
이후 고로쇠를 한 병 구입하면서 더 자세한 정보를 보니 ‘고로쇠’라는 단풍나무 과의 나무에서 뽑아내는 수액이 고로쇠 물인데, 맛도 맛이지만 몸에 다양한 이점을 준단다. 경칩을 전후해서 채취하는 수액은 요즘이 딱 마시기 좋은 때. 절 물, 약수 물, 나무에서 뽑아낸 물은 기분 상으로 더 맛이 날 수밖에 없긴 하다.
직접 물을 떠먹을 때의 그 청량함과 주변 공기와 나무 냄새와 같은 조건이 갖춰져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은 물이 있어서 밥물에 보태 밥을 지으면 밥맛이 정말 다르다. 불린 쌀도 아닌데 쌀알은 촉촉하게 익고 밥 냄새도 더 잘 퍼진다.
♣ 소금
물과 더불어 인간의 먹고 사는 데에 소금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을 것이다. 식재료의 맛을 내주는 것 외에 천연 방부제의 역할로 식품 저장에 요긴하게 쓰였던 소금은 고대 로마에서 병사들의 급료로 지급되기도 했다. 라틴어로 소금을 뜻하는 ‘샐(sal)’에서 그리하여 ‘샐러리(급여)’라는 단어도 파생된 것.
아무튼 우리 건강의 샐러리인 소금을 잘만 이용하면 좀 더 맛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터인데. 바닷물 그대로를 햇빛에 바짝 말린 ‘천일염’으로 해산물에 밑간을 하면 바다 냄새가 물씬 나게 되고, 천일염을 구워서 만든 ‘구운 소금’은 한번 구운 구수한 맛이 나서 고기 요리나 맑은 국을 끓일 때 좋다.
또, 한 번 볶아 낸 ‘볶은 소금’은 볶는 동안에 짠 맛은 다소 약해지지만 바삭한 식감이 생기기 때문에 생으로 찍어 먹을 때 혹은 피부 미용을 위해 쓰면 알맞다.
천일염을 대나무 통에 넣어 송진 불로 구운 것이 ‘죽염’인데, 정혈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해장국이나 환자식(食)에 쓴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는 요리에 쓰고 남은 식용 장미를 꽃소금과 함께 살짝 빻아서 따뜻한 물에 녹인 다음 입욕을 하는데, 미세한 장미 향기에 소금의 미네랄까지 더해져서 강남의 고급 스파가 부럽지 않은 홈 스파가 된다.
마트 폐장시간에 맞춰서 가면 두툼한 연어 스테이크도 20~30% 싸게 살 수 있는데, 요것을 손에 넣었다면 죽염으로 밑간을 해서 쪄내 보자. 생선을 쪄낼 때 물대신 값이 싼 정종을 냄비 바닥에 부어 주면 은은한 향기가 배어 비린내가 사라진다.
연어가 폭신하게 익으면 작은 덩어리로 살을 부순 다음 잘게 자른 다시마와 곱게 썬 가다랭이 포, 실파와 간장, 맛술,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이것을 강판에 곱게 간 마에 얹어 먹으면 별미인데, 연어 속에 함유된 좋은 기름기인 ‘불포화 지방산’과 천연 소화제인 마가 어울려 봄철 입맛을 잡아준다. 마 대신 갓 지은 밥 위에 얹어서 김 가루를 뿌리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오늘의 주제는 물과 소금이다. 물과 소금만 있어도 훌륭한 맛을 만들 수 있고, 반대로 물과 소금이 형편없으면 값비싼 식재료도 삼류 요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비단 요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무엇이든 기본이 되는 몇몇 요소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은 삶의 어느 구석에나 두루 해당되는 법칙이 아닌가.
값비싼 모피를 몸에 걸치기 보다는 청결하게 빨아서 좋은 볕에 말린 속옷을 갖춰 입는 것이 더 멋쟁이이고, 집의 평수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정갈하게 가꿔나갈 수 있는 ‘주부정신’이 더 우선이며 ‘감투’나 ‘완장’이 주는 으쓱함보다는 자신의 ‘됨됨이’부터 단련해야 무리 앞에 설 수 있다.
먹는 물처럼 기본적인 것부터 주의를 기울일 때 비로소 ‘노는 물’이 달라질 수 있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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