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전영(全英)오픈 테니스선수권대회는 런던 교외도시 윔블던에서 열려 윔블던대회로 더 친숙하다. 1877년 영국 상류사회의 클럽경기로 시작된 이 대회는 1968년 프로와 외국선수에게도 문호를 개방, 오늘날 프랑스오픈 US오픈 호주오픈 등 메이저대회 가운데서도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인정 받고 있다.
오픈대회가 되면서 달라진 중대한 변화는 외국 선수들이 우승을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10년 이후 남자 단식경기에서 영국 선수가 우승한 것은 1934년 이후 3년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외국인 잔치가 됐다.
▦ 집 대문을 열어놓자 외국인들이 몰려와 안방을 차지해 버리는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상황을 금융계에서는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라고 부른다. 1986년 대처 영국총리가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대폭 철폐하는 빅 뱅을 단행하자 영국 증권회사들이 줄도산하고 미국과 유럽 자본이 절반 이상의 금융회사들을 차지하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생겨난 용어다.
외환위기 이후 타의에 의해 금융시장을 개방한 이후 사실상 모든 시중은행 소유권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 금융주권 상실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요즘 우리 금융계 모습도 바로 그것이다.
▦ 그렇다고 윔블던 효과가 부정적 의미만은 아니다. 우승트로피는 외국 선수들에게 돌아가지만 매년 50만명 이상이 참관하고 전 세계에 중계되는 윔블던대회를 통해 영국이 얻는 유형 무형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금융빅뱅을 통해 영국은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지위를 굳혔고 국부의 3분의 1이 금융에서 창출되는 금융강국으로 부상했다. 개방과 국제화가 단기적으로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실증적 사례이다.
▦ 세계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 선수단이 놀라운 기량으로 숙적 일본을 두 차례나 물리치고 세계 최강 미국까지 격파, 한국민의 자존심을 한껏 높였다. 스포츠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듯 야구 외에도 축구 빙상 골프 등에서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를 점령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국력 신장, 경제적 뒷받침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스포츠의 개방과 국제화 덕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무대를 유능한 외국인 용병에게 개방하고, 우리도 메이저리그,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세계 수준의 기량을 닦고 쌓은 덕분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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