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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쉰들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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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쉰들러 열풍

입력
2006.03.1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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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중국의 오스카 쉰들러’를 기억합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강행 등으로 반일 감정이 격해지고 있는 중국서 난징(南京) 대학살 당시 중국인들의 목숨을 구한 독일 사업가 욘 라베(사진) 열풍이 한창이다.

뉴욕타임스는 15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심기가 상한 중국 학자들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역사 바로보기 운동을 추진하는 가운데 잊혀졌던 나치 출신의 한 독일 사업가에 대한 재발견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1937년 12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에서 일본군은 휘발유를 뿌려 불태우거나 생매장하는 등 잔학한 방법으로 30만 명을 살해했다. 97년 출판된 일기에서 라베는 “쓰러져 있는 민간인들은 일본군을 피해 도망가다 참사를 당한 듯 등 뒤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며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일본의 잔혹 행위를 막아달라”며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낸 편지가 무시되자 직접 사람들을 구해내기로 결심하고 외교관, 사업가 등 난징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을 모았다.

자신의 자택과 대사관 부지 등을 일본군이 들어올 수 없는 ‘난징 보호구역’으로 설정, 이 곳으로 피란한 중국인들에게 음식과 머물 곳을 제공했다. 라베의 집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진 중국인은 650명에 달했고 전체 보호구역을 합치면 20만 명에 이른다.

전쟁 소식에 가족을 모두 독일로 돌려보내면서도 중국인을 구하기 위해 난징에 홀로 남았던 라베는 당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행에 대한 증인이 되고 싶다”고 썼다. “인간이라면 이 같은 잔혹함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시체에 익숙해질 정도로 끔찍한 오늘의 참상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다짐도 눈에 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치 전력 탓에 소련군과 영국군에 체포돼 재판에 처해졌던 라베는 무혐의로 46년 풀려났다. 그러나 반복되는 심문과 재판 탓에 기력을 잃은 그는 50년 독일 베를린에서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 베푼 호의를 기억한 중국인들은 소포로 그에게 먹거리와 돈을 보냈지만 49년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그나마도 끊겼다고 전해진다.

많은 선행에도 불구하고 라베는 중국인들에게 잊혀진 인물로 남아있었다. 대학살 당시 국민당이 벌였던 항일 운동이 영웅화되는 것을 공산당이 껄끄러워 했을 뿐 아니라 사건 자체가 국치로 여겨져 거론이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으로 열이 오른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중국판 쉰들러’를 내세워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 70년 동안 관리하는 사람조차 없어 잡초가 무성했던 난징의 라베 생가는 기념관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난징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라베의 일대기를 교과서에 넣자는 주장이 나왔으며 역사학자들은 28권에 달하는 대학살 시리즈 집필에 착수했다.

중국의 이 같은 ‘라베 찾기’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중국은 개혁ㆍ개방 이후 나타난 부작용을 무마하기 위해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며 “일본 극우파의 세가 불어나자 중국에서는 ‘부끄럽다고 숨기지 말고 후세에게 올바를 역사를 기억케 하자’는 취지로 ‘라베 재발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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