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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라이프 - 도보 여행가 김남희·박영민의 발바닥으로 보는 세상

입력
2006.03.1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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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트레스를 왕창 풀기 위해 주말에 짬을 내 떠나는 것. 설레임과 짜릿함과 자유가 있다.’일반인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항상 여행 중인 사람’에게는 적용이 힘들 듯하다. 두 발로 걸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도보 여행가가 늘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여행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있어 여행은 과연 무엇일까.

김남희(37), 박영민(28)씨는 발바닥으로 세상을 보는 도보 여행가이다. 그들은 6개월만 일하고 6개월은 여행을 한다. 일하는 이유는 떠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진짜 여행’에 대한 나름대로의 그림이 있는 것일까.

“Are you Korean(한국분이세요)? 초면에 죄송하지만 혹시 설사약 좀 있으신가 해서요.”

박영민씨가 2004년 인도 다즈링의 한 식당에서 김남희씨에게 건넨 첫마디다. 그들은 이렇게 이국에서 만났다. 몇 마디 나누면서 김씨가 다음 행선지는 ‘산티아고’라고 하자 박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곳을 박씨는 이미 다녀온 터다. 도보 여행의 정보 교환은 이렇게 길에서 만난 이들과 이뤄진다. 이 인연으로 3일간 이들은 다즈링을 같이 돌아보고 헤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서울에서 다시 얼굴을 봤다.

박영민씨는 여행 6년차. 나이는 어리지만 김씨보다 여행 선배다. 가본 곳도 더 많고 헝그리 정신도 강하다. 여행지에서 그의 삶은 최저의 생계만 유지하는 극빈층 수준이다. 아무데서나 자고 아무거나 먹는다. 여행 4년차인 김남희씨도 이제 얼추 비슷해져간다. 여자라는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장벽이 있었지만 이제 많이 뛰어 넘었다.

물어보나마나 ‘자유가 좋아서’일 테지만 이 길을 왜 택했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짐작한 대로 두 사람의 입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틀 안에 갇힌 삶이 답답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부적응자예요. 부적응자. 사회가 만들어놓은 모범답안에 맞춰 사는 게 별로여서 다른 길을 가고 싶었던 것이죠.”

그들은 어떤 장소에 가서 단순히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수준이 아니라 열흘이 걸리든 한 달이 되든 그곳을 진심으로 느끼는 여행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개국이나 다녀왔냐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공허하다.

유명한 곳에 가서 증명사진 하나 찍고 오는 ‘몇 개국’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여행 성적을 메기는 속도 경쟁이 아니라 두 발로 세상을 천천히 열어가는 밀도 높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차나 자전거를 타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지만, 걸어 들어가면 자신의 ‘삶’이 돼 버린다. 여행지 간의 상대적인 비교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김남희씨는 지난 해 6월 말부터 36일간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 국경 근처의 산티아고까지 자그마치 890km를 걸었다. 2,000년 전 야곱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부터 걸어왔다던 그 길. 지난 여행 땐 설사병을 앓더니 이번엔 무릎의 십자인대가 끊겨 고생을 했다.

“걸으면서 오만 잡생각을 다 하잖아요. 그러다가 머리 속이 텅 비는 순간이 와요. 뭔가 쏴아 헹궈지는 듯, 의식이 비워지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 때문에 걷고 또 걷지요.”

박영민씨가 생각하는 여행의 매혹은 모든 것을 여행자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삶의 당사자가 아니라 관찰자의 눈으로 대하니까 모든 게 자유롭고 편하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버리고 자신마저도 객체가 되는 것. 박씨는 이를 “내가 지구를 자전 시키고 풍경이 나를 지켜봐 주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도달할 수 경지인 듯하다.

하지만 그들도 직장인이 간간이 슬럼프를 경험하듯 힘들 때가 있다. 노후가 갑자기 불안해지거나 몹시 외롭다고 느껴지거나 가족에게 걱정을 안겨줄 때 말이다.

“든든한 직장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보험도 없는데 왜 안 불안하겠어요. 저도 사람인데…” 김씨의 경우에는 그럴 때마다 덜 갖는 대신 더 질이 높은 삶에 더 충실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 길이 또 다른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이들은 둘 다 마흔 살 때까지만 걸을 생각이란다. 그때까지 여행은 계속된다. 김씨는 꼬박 3년, 박씨는 12년이 남았다.

“요즘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집 밖의 세상을 많이 보여주라는 것. 빈 여백을 많이 주세요. 그것을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 김남희씨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버밍엄대학 관광정책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터키대사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도보여행을 시작했고 앞으로 3년간 중동과 아프리카, 북미에서 남미까지 종단할 계획이다.

그 후 외국인을 위한 문화체험 게스트 하우스와 청소년 여행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다. 최근 여행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아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런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스페인 산티아고편(미래 M&B)’을 펴내기도 했다.

▦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난 박영민씨는 20살 즈음 우연히 동ㆍ서양 철학에 관심이 생겨 혼자 철학공부에 심취했다.

군 제대 후 바로 여행을 떠났는데 공부했던 철학과 여행이 어떤 화학반응을 보였는지 이후 여행이 업이 됐다. 전 세계를 돌아보는 게 목표인 그는 마흔 살에 외딴 지역 조용한 마을에 정착할 생각이다.

● 김남희 박영민이 말하는 걷기여행 잘하기 5계명

1. 걷는 기간 조절

건강한 성인남녀라면, 하루 30km씩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계속 강행군을 하다 보면 탈이 날 수도 있고 재미도 덜 하다. 일정에 ‘게으름뱅이 날’을 정해 아름다운 곳에서 적당한 기간을 소요하는 것도 괜찮다.

2. 깃털처럼 가볍게 배낭 꾸리기

걷기여행의 성패는 배낭 꾸리기에 달려있다. 일단 망설여 지는 것은 무조건 뺀다. 꼭 필요하다고 챙겨 넣은 짐도 다시 고민한다.

3. 혼자걷기와 함께 걷기

혼자 하는 여행도 좋긴 하지만 어떤 벗을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길에서 만난 친구들은 지치고 외로울 때 든든한 힘이 된다. 마음을 열고 친구 사귀는데 주저하지 말자.

4. 잘 먹어야 잘 걷는다

주로 아침이나 점심은 걷는 도중에 사먹고 저녁은 숙소에서 해 먹는다. 나라마다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챙겨 출발 전 그 재료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 정도는 익힌다. 아침은 빵과 주스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간편하다.

5. 내 몸 챙기기

걷는 여행에서 최대의 적은 무릎 부상을 비롯한 발과 다리 질환이다. 물집은 거의 모든 이들이 겪는 고통이다. 물집을 예방하려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바닥이 도톰한 등산용 신발을 신어야 한다. 걷기 전 베이비파우더를 발라주는 것도 방법. 발톱이 빠지기도 하니 깔끔한 발톱 관리는 필수.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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