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공정거래위원장에 경쟁법 연구의 권위자인 권오승 서울대법대 교수가 내정된 것은 시의적절한 인사로 판단된다. 강철규 전 위원장이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강화, 시장경쟁 제고 등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대과 없이 수행한 기반 위에서 ‘시장 선진화’ 과제를 이룰 사람으로 그만한 학식과 경륜을 찾기도 쉽지 않다.
특히 공정위의 기능과 역할을 재벌정책보다 경쟁정책에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은 전환기인 만큼 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장을 지낸 권 내정자의 역할이 주목된다.
재계는 열린우리당의 지원을 등에 업고 숙원사업인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몰아붙일 태세다. 자산 6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계열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한 이 제도가 이젠 유효성을 잃고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우리 기업의 발목만 잡는다는 근거에서다. 재계는 또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규제하는 현행 법과 제도도 크게 손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출총제나 금산분리 정책에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고 무책임한 짓이다. 이런 정도의 ‘시장 정화(淨化)’ 수단이 투자의 결정적 걸림돌인 양 투덜대는 기업이나 그에 동조하는 여당은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이 점에서 권 내정자가 “(소유지배구조를 왜곡하는) 순환출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출총제를 당장 폐지하는 것은 어렵고 연말까지의 성과를 검토한 뒤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자른 것은 적절한 메시지다.
아울러 주문하고 싶은 것은 권 내정자가 학자적 고지식함이나 원칙에 앞서 행정가적 유연함과 실용주의로 일을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는 추상같은 위엄을 보여주되, 기업의 고충은 고객 대하듯이 몸을 낮춰 성실하게 해결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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