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감독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소재로 만들어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15일 막을 올렸다.
평양연극영화대학 출신 정성산(37)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요덕스토리’는 북한 함경남도 요덕수용서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 탄압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제작된 창작 뮤지컬로, 1995년 탈북한 정 감독이 황해도 사리원 감옥에 수감돼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제작단계에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 극장 대관 취소, 국내외 보수 인권단체의 후원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치적 이슈가 됐던 작품이라 14일 열린 프리뷰 공연은 국내는 물론 수많은 외신들로부터도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아버지의 스파이 혐의 때문에 온 가족이 요덕수용소로 끌려가게 된 북한 최고의 무용수 강련화(최윤정)의 시련을 그리는 ‘요덕스토리’는 이들 가족이 수용소 내에서 당하는 고문과 폭행이 극 전반을 주도한다. 3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 동안 코 앞에서 펼쳐지는 고문, 폭행, 강간, 집단총살, 채찍소리, 비명소리, 울음소리 등은 정서적 공포와 감각적 불편함을 안겨주며 관객을 짓누른다.
그러나 ‘요덕스토리’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탄압 실상을 폭로하겠다는 작품의 의도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낸다.
비평적 관점에서 작품을 보려는 태도가 불온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당한 주제지만, 북한의 참혹한 인권탄압 실상을 보여주는 데 있어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선택은 현명하지 못했다. 뮤지컬은 무엇보다도 스펙터클과 신명을 젖줄로 삼는 유흥의 장르이자 어느 무대예술보다 비사실적인 장르라는 점에서 극중 참상은 다큐멘터리에 필적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주지 못한다.
의도는 관객의 공포가 아니라 슬픔을 건드리는 것일진대, 오롯이 예술적으로 수용하기엔 서사와 캐릭터가 너무 단선적이다. 사악한 수용소장 리명수(임재청)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이를 낳는 연화를 통해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설파하지만, “당신을 만나기 위해 수용소에 왔다”며 동정녀 마리아처럼 숭고한 자세로 일관하는 연화의 캐릭터는 상투적이다.
장중한 분위기를 깨고 춤과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도 유흥에의 동참을 방해하고, 끊임없이 영어 자막을 힐끔거려야 할 정도로 불명확한 가사 전달도 적잖이 거슬리지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기 드문 예술적 문제 제기라는 점은 묵과할 수 없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4월2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화ㆍ수 오후 8시, 목~토 오후 4시ㆍ8시, 일 오후 2시ㆍ6시. 1544-1555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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