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맞은편 인도는 늙고 쇠약한 80대 할머니들의 전쟁터가 된다. 15일도 예외 없이 12명의 할머니가 노구를 이끌고 도로 턱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이크를 힘겹게 부여 잡은 이용수(79) 할머니가 일장기가 휘날리고 있는 일본 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이 놈들아, 우리가 또 왔다. 이번이 700번째다. 16살 되던 해 네 놈들 손에 끌려가 당한 치욕의 한을 풀기까지 내가 못 죽는다.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죽을 힘을 다해서 여기 온다. 네 놈들이 고개 숙여 사죄할 때까지 또 올 테다.”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해온 정기 수 집회가 700회를 맞았다. 1992년 1월8일 첫 시위가 시작된 이래 무려 5,180일이 흘렀다. 2002년 3월 500번째 시위부터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시위’로 등재됐다.
하지만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본의 입장은 단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이날 평소보다 5배 이상 많은 200여명의 학생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어 ‘정신대 성노예 범죄인정’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책임자 처벌’ ‘법적 배상’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일본대사관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15년이면 저 (일본) 대사관 담벼락에 할머니들의 통곡과 한이 새겨질 세월인데 강산이 변하도록 꿈쩍 않는 일본 정부의 얼굴엔 강철보다 더한 가면이 덧씌워져 있는가 보다”며 통탄했다.
오히려 그 동안 달라진 것은 하나 둘씩 사라진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10~20명씩 번갈아 시위에 나섰던 225명의 군 위안부 할머니 중 105명이 세상을 떠났다.
박옥순(83) 할머니는 “우리네야 이렇게 죽어 사라져도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황금주(87) 할머니는 “정부와 정치인들은 우리가 이렇게 시위하는 것을 알기는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대협은 이날 시위 참석자들에게 총 7가지 요구 항목을 적은 무지개 색종이를 나눠주고, 우리 소리꾼 ‘바닥소리’와 서울여대 노래패 등을 출연시켜 분위기를 돋궜지만 행사는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벗지 못했다.
92년생인 이욱준(서울 대명중 2)군이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할머니들, 일본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아프지 마세요. 죽지도 마세요. 오래오래 사세요”하고 외치자 몇몇 할머니들은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집회가 끝난 후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피켓을 들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외교통상부까지 행진했다. 이어서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4명이 외교부를 방문,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요구서와 집회 참가자들이 작성한 엽서 200여장을 제출했다.
정대협은 일본 여성단체들로 이뤄진 ‘위안부 문제 행동네트워크’를 통해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항의서한도 전달했다. 이날 700회 기념 시위는 부산 일본영사관 등 전국 주요 도시와 베를린 뉴욕 런던 등 해외 13개 도시, 그리고 도쿄(東京) 등 일본 7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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