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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노장이 대우받도록

입력
2006.03.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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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는 도깨비가, 소년기에는 일본 순사가 무서웠습니다. 해방 뒤에는 이데올로기가 두려웠고, 그 뒤에는 군화가 무섭더니만 요즘은 구조조정이 가장 무섭습니다.”

11일 전남 장흥에서 크랭크인 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정일성(77) 촬영감독은 “이 나이 되도록 일할 수 있어 기쁘기만 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가 발을 빼 ‘천년학’의 날개가 꺾일 뻔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한국영화의 산 역사인 노 대가도 ‘퇴출’의 공포를 실감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충무로에서 중진과 노장 감독들이 사라지고 있다.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나이 든 감독들의 순발력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진과 노장들이 차지했던 자리는 신인들로 메워지고 있다. 2004년 개봉된 한국영화 75편 중 31편이 신인 감독의 몫이었다.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 영화를 ‘제대로’ 공부한 젊은 피의 수혈은 분명 충무로의 활력소이다. 그러나 이들도 대부분 영화적 재능을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또 다른 신진에 밀려 ‘1회용 감독’으로 소비되어가고 있다.

11일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생전에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은 영화계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방송에 몇 번 얼굴을 내밀고… 곧바로 후배들에게 밀려나 찬밥신세가 된다.

데뷔 1년 만에 중견 되고 2년 만에 원로 되고 3년 만에 은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코미디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는 “제대로 된 정치 풍자가 없어 코미디언의 조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가벼운 말장난과 잔재주만으로는 국내 코미디의 발전은 멀기만 하다”고 진단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인재를 키워가기보다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젊은 세대의 트렌드 변화만 좇는 충무로의 현실이 노장들의 퇴진과 젊은 감독들의 조기 은퇴를 종용하고 있다.

신이 내린 천재가 아닌 이상 한 두 편 만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걸작은 탄생한다. 신인의 패기와 노장의 연륜의 어울림, 영화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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