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사퇴를 계기로 향후 당정청 관계가 뚜렷한 당 우위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소한 5ㆍ31 지방선거까지는 그럴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드물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총리 사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당 우위 당정청 관계를 짐작케 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15일 “대통령이 많이 변하신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1월초 유시민 복지부 장관 임명 파동 당시와 대조적이다. 그때 노 대통령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더욱이 여당 지도부와 만나 의견을 듣기로 해놓고 하루 전날 유 장관 내정을 전격 발표해 버렸다.
노 대통령의 자세변화는 무엇보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염동연 사무총장은 이날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당에 힘을 실어 준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핵심 당직자도 “대통령이 선거를 숫하게 치러본 분인데 별수 있었겠냐”고 지적했다. 당장 당의 선거 승리가 급한 만큼 청와대는 한발 물러 서 있고, 당을 전면에 내세워 지원해야 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정 의장이 여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당을 확실히 장악하고 선거국면을 주도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정 의장은 이번 골프 파문의 와중에 함구령을 내려 당의 분란 가능성을 막고, 지도부간 역할 분담을 통해 이 총리 거취문제에 대한 당내 합의를 이끌어냈다. 실세 의장으로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당이 선거 이슈를 선점하고, 정책현안에서도 정부에 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일반적이다. 의장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이제부터 선거이슈와 정책개발에 모든 당력을 쏟을 것”이라며 “당이 실질적으로 정책을 컨트롤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에도 당 우위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당과 정 의장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 책임을 둘러싸고 당청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노 대통령도 선거 패배 시에는 나름의 정치적 승부수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선 당청 결별 또는 정계개편이라는 정치판 전체의 변화가 올 수도 있다. 현 국면에서 정 의장 체제의 당이 여권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