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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울면, 같이 울고싶다' 로망스의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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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울면, 같이 울고싶다' 로망스의 김지수

입력
2006.03.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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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재발견은 너무 늦었다. 무려 14년 넘게 곁에 있었는데, 우리는 그녀가 깊은 우물 같은 침묵으로 시퍼렇게 멍든 내면의 피울음을 토해내는 것을 보고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꿈틀거리는 손등의 힘줄, 초점 없는 눈동자, 뒤돌아보는 텅빈 몸짓으로 천 마디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딱한 여자 ‘정혜’를 통해서야 김지수라는 배우의 존재를 새삼 자각했다.

첫 영화 ‘여자, 정혜’로 국내외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휩쓴 14년차 탤런트에게 뒤늦게 몰려든 시나리오 수는 눈이 밝지 못한 이들의 때늦은 후회의 무게를 그대로 환산한 것이었다. 16일 개봉하는 ‘로망스’를 시작으로 최근 촬영을 마친 ‘가을로’, 이달 말 크랭크인 하는 ‘미열’까지 ‘멜로 3부작’을 내처 달리는 그녀는 그러나 냉정해 보일 만큼 담담했다.

“첫 영화는 정혜에 대한 연민 하나로 끝까지 간 작품이에요. 운이 참 좋았죠. 정혜도 그랬고, ‘로망스’의 윤희도 그렇고, 영화를 할 수 있는 힘은 캐릭터에 대한 연민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로망스’는 정치가의 아내와 말단 경찰(조재현)이 단 세 번의 만남으로 목숨까지 내던지는 지독한 사랑에 빠져드는, 다소 신파적인 이야기다. “사실 시나리오보다는 ‘나비’를 만든 문승욱 감독을 한 번 믿고 가보자는 생각에 선택했어요. 공감이 쉽진 않지만 한, 두 번 만에 ‘너는 내 운명’이라고 느낀 적이 있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녀는 의심이 많은 여자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첫 눈에 사랑에 빠지는 거냐”고 반문하는 그녀는 그런 사랑이 참 신기하다고 했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 사람이다, 아니다 판단되는 거지 어떻게 첫 눈에…. 다 거짓말 같아요.”(웃음)

그래서 윤희를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관객의 공감을 얻으려면 이야기 자체에 설득력이 있어야지 배우의 연기만으로 절대 커버되지 않아요. ‘로망스’는 다소 올드 한 이야기에 제 캐릭터도 전형적이어서 신파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눈물도 되도록 자제했고요.”

두번째 작품이 데뷔작에 미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를 우려할 법도 하건만 그는 “나의 선택이 시행착오였다 해도 좋은 경험이고, 실패하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느긋하게 말했다.

그녀를 배우로서 가장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것은 눈물 연기다. 일그러지는 얼굴 근육에 대한 두려움을 내팽개친 정직한 울음. 만약 ‘로망스’가 실패한다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상투적인 스토리텔링 탓일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게 우는 이 여배우의 울음이 갖는 강력한 전염력 때문일 것이다.

“눈물샘에서 눈물을 뽑아내는 테크닉 같은 건 없어요. 15년쯤 하다 보니 슬픈 감정을 불러올 수 있게 된 거죠. 어떨 때는 작품 때문에 우울해지고, 우울할 때 그런 연기가 더 잘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늘 우울하게 살 수는 없잖아요. 즐겁게 살아야겠고, 개인적 행복도 포기할 수 없고, 그럼 어떻게 하나…, 감성을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죠.” 책 많이 읽고, KBS ‘인간극장’처럼 좋은 프로그램 접하고, 하늘도 자주 보고, 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마음의 창고에 차곡차곡 슬픔을 쌓는다. 그리고 ‘Go’ 사인과 동시에 창고를 열어 한 돈의 슬픔을 꺼낸다.

노출과 변신이 연기력과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치환되는 요즘 풍토에 그는 드물게 고전적인 연기 철학을 견지한다. “변신을 위한 변신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액션 연기? 섹시한 연기? 중요한 건 배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깊어지는 거죠. 다소 답답하고 상처 입은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왔지만, 슬픈 연기라고 해서 다 똑같은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온 거죠.” 어쩌면 그 ‘조금씩’이 쌓이고 쌓여 ‘여자, 정혜’에서 폭발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 다섯. 그녀는 “나이가 드니까” “어릴 땐 몰랐는데” 같은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얼마 전 남자친구(김주혁)와도 얘기했는데, 조연이 되더라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어요.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어 두렵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주인공 역할만 들어오진 않을 거고,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그땐 조연으로서 배우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 갈 겁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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