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여러 대가 줄지어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중년 여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들이 줄지어 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더니, 잠시 가이드의 또랑또랑한 설명에 묻혔다. “구마모토(熊本) 성은 임진왜란 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었습니다.
일본의 안내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시 조선의 축성 기술을 활용한 흔적이 뚜렷합니다. 일본의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모양의 성벽을 주의 깊게 살펴 보십시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오른팔로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던 가토의 본거지라는 점에서 구마모토성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이 고울 리 없지만 가이드의 재치 있는 설명이 그런 감정을 희석하는 대신 ‘무샤가에시(武者返)’라는 독특한 모양의 성벽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성벽이 위로 올라갈수록 수직으로 휘어져 타고 오를 수 없게 만든 축조 방식이다. 내년의 축성 400주년을 앞두고 보수공사가 한창인 구마모토성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본 규슈(九州) 지역이 대표적 겨울철 해외 관광지로 떠오른 지는 오래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곳곳에 온천과 문화유적이 널려 있는 데다 최근에는 골프장 이용료가 역전돼 골프 관광객도 줄을 잇는다.
후쿠오카(福岡)ㆍ미야자키(宮崎)ㆍ가고시마(鹿兒島)ㆍ나가사키(長崎)ㆍ오이타(大分)현 등의 한국 관광객 유치 경쟁도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규슈 한복판에 위치한 구마모토현도 최근 주 3회의 인천공항 직항편이 열린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한국 관광객 유치경쟁에 나서 있다.
■구마모토성 외에도 활화산인 아소(阿蘇) 산, 분당 60톤의 지하수를 쏟아내는 시라카와(白川) 수원지, 산재한 온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지만 주변 경쟁 지역을 따돌리긴 어렵다. 대안의 하나가 바로 ‘아트폴리스’ 사업이다. 건축물 설계ㆍ시공에 세계적 건축가들의 입김을 불어 넣어 자연ㆍ문화와 조화를 이룬 건축도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엘리아 젠겔리스(그리스), 에레니 지간테스(인도), 이토 도요오(伊東豊雄) 등 명장들의 손길이 전통인형극 극장이나 미술관, 청소년 수련원, 경찰서, 공공 화장실 등에 고루 미치고 있다. 언젠가는 아시아의 빌바오가 되리라는 꿈이 익어가고 있다. 지역을 만들고, 살리는 지혜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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