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의 사표를 수리키로 한 것은 골프 파문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3ㆍ1절 골프가 부적절했지만 일국의 총리를 바꿀 정도가 되느냐”, “골프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기골프를 하지 않느냐”는 보호 논리는 온갖 의혹들이 터져 나온 지금 국면에서 견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노 대통령은 14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 이해찬 총리를 면담했을 때만해도 딱 부러진 답을 주지 않았으나 이날 오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면담에서 “당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이 총리의 사표 수리를 발표했다.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을 때 즉답을 유보했던 것은 예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도 답이 같다”고까지 격찬한 이 총리를 보자마자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소한 청와대 보고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우리당의 의견을 듣는 절차는 밟아야 했던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 보고 때도 침묵했던 노 대통령이 정 의장을 면담하자마자 사표 수리를 발표한 대목이다. 정 의장이 민심 이반을 지적하고 이 총리의 사퇴 불가피론을 설파한데 동의했다는 점은 사실관계를 떠나 정치적으로는 당에 힘을 실어주는 제스처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어떤 정치인보다 선거의 중요성과 정치적 승부를 인식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 의장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 민심과 당을 하나로 묶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의 사표 수리가 이 총리를 둘러싼 온갖 의혹들을 사실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병완 실장은 노 대통령에 “현재까지는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고 보고했으며 문재인 민정수석도 “이 총리가 골프를 통한 로비에 휘둘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일단 의혹을 부인하는 기류다. 따라서 사표 수리는 부적절한 처신으로 유발된 민심 이반에 책임을 지우고 여권의 면모를 일신, 지방선거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또 다른 의미의 도전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이 총리는 15일 지방선거에 출마할 이재용 환경부 장관과 임기가 끝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후임을 대통령에게 제청한 뒤 바로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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