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가 청년 실업 해소책이라며 내놓은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무섭게 번지고 있다.
상황이 격해지자 현지 언론은 “1968년 일어난 5월 혁명과 유사한 양상으로 시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라며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노리고 있는 빌팽 총리가 혁명의 타격으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샤를 드골 전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은 “11일 새벽 경찰이 파리 소르본대에 진입해 농성을 강제 진압한 데 대한 반발로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14일 전했다. 고등학생까지 합류한 200여명의 학생들은 무기한 폐쇄된 소르본대 대신 13일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에 모여 ‘최초고용계약법 무효’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콘크리트 벽돌과 바리케이드를 던지며 경찰과 대치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종용했다.
프랑스 최대 학생 조직인 전국학생조합(UNEF)은 이날 “84개 국립대 중 50개 대학 학생들이 시위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밝혔다. 프랑스 교육부는 “14개 대학이 완전 봉쇄됐고 27개는 부분적으로 마비됐다”고 발표하는 등 안정된 일자리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빌팽 총리로서는 40년 전 드골이 겪었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계와 학생운동 진영이 결합해 번져가는 양상이 비슷한데다 ‘소르본대 경찰 투입’이라는 초강경수가 68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도 빌팽과 드골을 한데 묶어 생각케 하는 요인이다.
5월 혁명은 파리 외곽 낭테르대에서 대학 환경 개선 시위로 시작해 프랑스 전역으로 번진 학생ㆍ노동 혁명이다. ‘부유한 대학생들의 철없는 투정’으로 여겨 시위를 관망하던 노동자들은 경찰 진압이 격해지자 “학생들에 대한 탄압 중지”를 권고하며 농성에 합류했다.
드골 대통령의 독단적 경제 운영으로 낮은 임금, 높은 세금, 긴 근로시간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정부의 강경일변도 진압에 분노가 폭발, 교통 금융 우편 등 프랑스 전체가 3주간 멈춰서는 초유의 시위로 번졌다.
드골 대통령은 노사대표와 임금 인상 및 노조의 권리 향상 등을 보장하는 ‘그루넬 협약’을 맺으면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결국 의회 해산 및 총선이라는 극단적 승부수를 던졌다. 68년 6월 실시된 총선에서 “내전을 원하는가”라는 협박에 가까운 호소가 먹혀 드골 대통령은 압승을 거뒀으나 혁명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상원 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패배, 이듬해 4월 물러났다.
로이터 통신은 “프랑스에서 대규모 시위는 집권자의 정치력에 치명적 악재”라며 “드골 대통령 낙마와 아울러 95년 공적연금 개혁 시도로 대규모 시위를 불러 일으킨 알랭 쥐페 총리의 97년 총선 참패를 볼 때 대통령을 노리는 빌팽 총리는 좌불안석일 것”이라고 전했다. 드빌팽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49%에서 7%포인트 떨어지는 등 학생들과의 갈등이 여당 내 라이벌인 니콜라 사르코지 장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시위를 촉발한 최초고용계약법은 소규모 사업장의 고용주가 26세 미만 직원을 고용 후 2년 동안 자유롭게 해고토록 한 것으로 4월 시행될 예정이다.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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