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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타락한 좌파, 누추한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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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타락한 좌파, 누추한 총리

입력
2006.03.16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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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섹스 스캔들로 망하고, 진보는 돈 때문에 파멸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가 팽팽하게 경쟁해온 영국 정치의 내력이 그렇다는 얘기다. 유명한 프로퓨모(Profumo) 사건처럼, 태생부터 기득권 계층에 속해 아쉬울 게 없는 보수당 정치인은 방만한 섹스 행각으로 정권을 뒤흔든 사례가 많다.

그 기득권 세력에 맞서 도덕성을 앞세우는 노동당 정치인은 뜻밖에 정경유착 비리에 얽혀 정권의 정당성을 허문 경우가 흔하다. 서민적 풍모를 과시한 해럴드 윌슨 전 총리가 졸부들에게 귀족 작위를 남발한 아이러니가 대표적이고, 지금 블레어 총리 정부도 여성각료의 비리 파문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 시선 무시한 기득권 흉내

어느 사회보다 열심히 부도덕한 기득권 타파를 부르짖는 영국의 좌파가 스스로 타락하는 원인은 뭘까. 선거 등 모든 정치과정을 공영제로 운영, 정치비용이 들지 않으니 정치자금과는 무관하다.

총리와 각료는 평균 임금의 몇 배 고액 연봉을 받으니 생활이 어려워서도 아니다. 권력을 잡고 나면 출신과 정치기반을 모두 잊고, 가까이 다가선 기득권 계층의 라이프 스타일, 사는 모습에 현혹돼 원숭이처럼 흉내내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그럴 듯 하다.

이렇게 타락한 좌파는 기득권 상류계층이 자신들에게 접근하는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다고 한다. 엉겁결에 권력을 차지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들을 지지한 대중을 더 이상 아랑곳 않는 오만이 주된 원인이다. 그들의 변모에 대중이 분개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탐욕을 좇아 기득권을 누리는 것을 골프의 파 플레이 정도로 예사롭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영국 정치의 교훈이 최연희 성추행 사건과 이해찬 골프 게이트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연치 않게 잇달아 불거진 사건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이처럼 절묘한 상징도 다시 없을 성 싶다.

최 의원이 지각 없고 방만한 추행으로 기득권 세력의 낡고 음습한 이미지를 되살렸다면, 이 총리는 자신의 기반인 진보좌파 세력이 끊임없이 타도를 외치는 상대인 기득권 계층의 행태와 의식을 어느 한구석 빼놓지않고 답습한 모습을 보였다. 골프 게이트가 단순히 부적절한 골프 파문이 아니고, 그저 총리 개인이 부덕한 소치로만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멀게는 100년 전 기득권 세력의 친일 단죄를 부르짖는 정부의 총리가 3ㆍ1 절에 몰래 골프를 친 것은 부적절하고 부도덕하다. 접대골프에 내기골프까지 즐겼다니 비난은 더 커진다. 거짓해명을 일삼는 모습은 한층 볼썽사납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은 그런 골프 행각과 졸렬한 해명을 훨씬 넘어선다. 어울린 기업인의 면면과 교원공제회 주식투자 의혹 등이 개혁세력의 타락과 정경유착의 썩은 냄새를 풍기는 것이 에피소드 전체의 본질이다.

독재와 기득권에 저항한 것을 만고에 자랑할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들이 과거 기득권 세력보다 너절한 정경유착을 즐기는 모습은 이미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독재시절 정경유착은 산업건설과 경제성장에 이바지한다는 명분과 실적이나마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집권세력의 정경유착은 기껏 사적인 탐욕을 함께 도모하는 데 불과하다. 이 총리의 골프 게이트가 국민의 눈에 누추하게 비치는 것도 그런 수준을 벗어났다고 볼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독재시절보다 너절한 유착 의혹

양극화 해소를 외치는 대통령과 총리와 각료들이 봉급을 통째 저축하고, 서해안 섬에 별장 짓기 좋은 땅을 마련하고, 영악하게 이권을 노리는 지방 토호들과 어울리는 현실은 한국적 좌파 집권세력의 타락과 위선을 상징한다.

그런 기득권을 동경했을 뿐 진정한 도덕심은 없는 권력주변의 아첨꾼들은 다시 어떤 교언(巧言)을 궁리해 낼지 모르나, 누추함을 가리고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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