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김모(34)씨는 다음 달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생각만 하면 마음이 설렌다. 3년 전 건강 유지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해도 5㎞를 헉헉대며 겨우 뛰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린 김씨는 힘겹게 10㎞ 벽을 통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첫 도전한 하프 마라톤 대회 기록에 만족한 김씨의 다음 목표는 42.195㎞ 정복이었다.
몇 차례 풀 코스를 완주한 김씨는 드문드문 대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이젠 거의 매주 또는 격주마다 풀 코스 대회 출전을 위해 전국을 찾아 다니는 게 주말의 일상이 됐다.
언론사나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여는 마라톤 대회를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거의 매주 풀코스의 장이 마련돼 있다. 올해 초에는 100㎞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국내도 모자라 해외 마라톤 대회에 도전장을 내민 김씨는 “달리면서 기록을 단축해가는 성취감은 뭐라 말할 수 없다”며 “내년에는 철인3종 경기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씨에게는 건강 유지보다는 매번 높게 세운 목표를 이뤄가는 게 운동의 목적이 된 셈이다.
마라톤 경력 5년차인 회사원 손모(43)씨는 요즘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지난해 3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후 햄스프링(허벅지 뒷부분)에 부상을 당해 마음껏 뛸 수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볍게 달리면 그적저럭 견딜만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뛰려고 욕심을 내면 어김없이 다리근육이 당기고 콕콕 찌르는 통증이 찾아와 포기하기 일쑤다.
손씨는 “의사는 당분간 아예 뛰지 말고 찜질 치료만 받으라고 충고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며 “대회가 있는 날이면 다른 동료들이 뛰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운동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운동중독이다.
‘운동=건강=웰빙=행복’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동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고 스스로 운동량을 조절하는 능력마저 약해져 운동을 못할 경우에는 혼란과 무기력증에 빠지는 현상이다.
마라톤, 보디빌딩, 축구 등 생활체육 동호인의 70%가 이러한 증세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진상태에 이를 정도로 운동강도가 최고점(death point)에 이르면 베타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져 고통은 줄고 행복감이 커지는 상태(second wind)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라토너들이 30분 이상 달렸을 때 느낀다는 ‘몸이 붕 뜨는 기분(runners’ high)’도 여기에 해당한다.
심리적인 요인도 크다. 처음에는 건강관리나 기분전환을 위해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다가 조금씩 성취감을 맛보면서 운동에 한없이 매달린다. 정모(30ㆍ여)씨는 지난해 5월 동네 헬스클럽에 다니면서 2달 동안 3kg을 감량했다.
운동에 재미를 붙인 정씨는 회식은 물론 주말에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까지 취소하면서 운동하러 다녔지만 왠일인지 더 이상 체중이 줄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벌써 해를 넘겼다. 이제는 운동 생각만 해도 고역이지만 선뜻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정씨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초해져서 매일 1시간 이상 운동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팔다리와 무릎이 아프기만 할 뿐 예전처럼 즐겁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런 운동중독 증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관절, 근육의 부상은 물론 숨이 가빠지는 작은 이상신호라도 나타나면 즉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동춘 국민체력센터 운동처방실장은 “한번 맵고 짠맛에 길들여지면 더 강한 맛의 음식을 찾는 것처럼 운동중독도 신체와 정신의 균형이 깨지는 일종의 탐닉현상”이라며 “쉬거나 운동강도를 줄이면서 스스로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운동중독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강신욱 단국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운동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리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이 때 오히려 조언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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