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갔다. 제주의 바다는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 쪽빛의 바다는 내 마음의 미혹을 지우고 투명함을 드러내 보인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바다에 서면 나는 더 이상 다층의 인간이 아니다. 단순하고 명료한 물빛이 된다. 가벼운 존재의 기쁨을 제주의 바다는 일깨워주는 것이다.
●분별심 지우고 모두를 하나로
바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하루 밤을 잤다. 바다는 꿈결처럼 내 의식의 심층을 들락거렸다. 나는 바다를 꿈꿨다. 바다를 마구 유영하는 나는 꿈속에서 자유로웠다.
물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은 내 바람 하나를 꿈속에서 실현한 셈이다. 어디에서건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것이 설혹 꿈속일지라도 성취감을 느끼는 그 순간은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만난 물에서의 자유는 바다가 내게 건넨 선물이었다.
이른 아침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걸어오는 풍경을 보았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오랜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순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맺어주는 그 웃음의 공감은 무엇일까. 나는 문득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 궁금증을 지웠다. 어쩌면 그들은 대화가 아니라 신뢰와 사랑으로 마주보고 미소 짓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는 이렇듯 모든 것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것은 바다가 언제나 일미평등하기 때문이다. 바다에 가면 분별심을 버리고 모두와 하나가 되어 함께 하는 마음을 만날 수가 있다. 바다는 그 마음의 길을 보여준다. 일망무제의 끝없음으로 분별심을 지우고, 일미평등한 그 성품으로 함께 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그곳에서는 모든 물길이 자기의 이름을 기꺼이 버린다.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500명의 대중과 함께 하는 수장자에게 물었다. “수장자여, 그대는 많은 대중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 어떤 법으로 이 대중들과 함께 하고 있는가.” 그러자 수장자가 대답한다.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네 가지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은혜로 주고, 부드러운 말을 하고, 이익 되게 행동하고, 행동을 같이 합니다.”
●위정자, 대중의 마음 헤아려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서로 나누고,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행동을 함께 하는 것이다. 자기 일을 다 했다고 대중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해 때, 강원도 산불 때, 3ㆍ1절 날, 골프를 치는 총리는 500명의 대중을 거느린 수장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함께 할 때 아름답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지금 우리들에게는 필요하다. 양극화를 말하는 사회에서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극복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라. 바다는 작은 물줄기 하나까지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받는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겠는가.
3월 제주의 아침 바다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미소와 함께 또 한 번 아름답게 깨어나고 있다.
성전스님·남해용문사 주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