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입학을 축하하며’ ‘아빠, 엄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야, 우리 사랑 잊지말자’
서울 청계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앞으로 1,500개의 사연을 담은 나무계단을 밟으며 산을 오를 수 있게 됐다. 서울 서초구가 주말 평균 10만명 이상이 찾는 청계산 등산로 훼손을 막기 위해 마련한 환경정비사업에 주민들이 자신의 사연과 이름을 적는 조건으로 개당 8만원의 계단목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사연 담긴 계단’이 만들어지는 곳은 옥녀봉~매봉 등산로 중 경사가 심한 산토끼옹달샘∼헬기장 1,090㎙ 구간. 서초구는 이달부터 5개월간 구 자원봉사센터에 입금된 주민들의 기금 1억 2,700만원을 포함, 총 2억원을 들여 나무계단 750개를 설치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1단계 사업으로 갈마재에서 중턱 공중전화에 이르는 217㎙ 구간에 계단목 500개를 설치했다”며 “길이 1.5㎙의 계단목 2개를 붙여 한 개의 나무계단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겨지는 사연은 주로 아기자기한 생활 속 이야기들이다. 방배2동에 사는 김희자(52)씨는 ‘태훈, 안나야 사랑해-엄마, 아빠가’라는 글귀를 계단에 써넣고 싶다고 신청했다. 김씨는 “한달에 한번 자녀들과 청계산을 오른다”며 “등산할 때마다 가족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막내 사위에 행운과 시험 합격을 기원합니다’ ‘독도는 우리땅’ ‘아들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단다’ ‘처음 손주가 탄생함을 기념’ 등 시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15㎝ 높이의 나무계단 층층이 새겨진다.
경기, 충남, 대구,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경기 용인시 풍덕천동에 사는 최정자(65) 할머니는 구청 공원녹지과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청계야 웃자, 이화 등산 60’이라는 글귀를 새겨 달라고 당부했다. 최 할머니는 “10년 전부터 이화여고 동창들과 매주 화요일 등산을 했다”며 “서울, 분당에 사는 친구들과 중간지점인 청계산에서 만나 우애를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늦게 만나 이룬 사랑,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예쁘게 살아요’란 문장을 신청한 50대의 홍정옥(경기 하남시)씨는 “3월11일 사랑하는 남자와 재혼했다”며 “우리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사연을 남겼다”고 말했다.
안타깝고 슬픈 사연도 담겨질 예정이다. “엄마 아빠는 널 영원히 사랑해!”를 남긴 반포본동에 사는 김모씨는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며 “아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계단목 2개를 기증했다”고 말했다.
우면동의 최모씨는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아빠가’란 사연을 남겼고 ‘사랑하는 여동생의 혼을 여기 묻는다’는 글귀도 신청됐다.
구 관계자는 “접수 시작 3개월 만에 1,590개나 신청됐고 100만원 이상의 고액 기증자도 14명이나 됐다”며 “주민참여형 등산로 정비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