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웃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11일 오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남긴 ‘웃음 철학’이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숨지기 하루 전 개인 홈페이지에도 웃음과 삶에 대한 신념을 담은 마지막 글을 올려놓을 만큼 우리 사회의 ‘웃음 전도사’ 역을 자임해왔다.
“우리가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애쓰는 이유는 뭔가? 결국 웃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데 신경을 쓴 나머지 웃지 못하고 산다.”
김씨는 평소 ‘웃음이 있는 나라에는 희망이 있다’는 지론을 폈다. 자살이 느는 등 사회 분위기가 흉흉하게 된 것도 웃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김씨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그러나 김씨는 헛헛한 웃음이 아닌 ‘뼈있는’ 웃음을 원했다. 시대에 대한 풍자가 없는 개그는 말장난에 불과하며, 모든 국민을 웃길 수도 없다는 것이다.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에 직장 다니면 도둑) 현실에 낙심한 40, 50대에게 “사람과 식품 모두 제조일자보다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식품과 달리 자기계발만 하면 유통기한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는 유머로 용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김씨는 늘 의미 있는 웃음의 생산에 주력했다.
그는 전 국민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TV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밤) 10시대에는 코미디 프로를 고정 편성해야 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웃다가 잠들게 해야 한다…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 나오게 해야 한다…정치인들 때문에 잠을 설치고, 가위 눌리는 그런 국민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개인 홈페이지에 남긴 마지막 글에서)
김씨는 “웃음은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가 ‘웃자 코리아 국민운동본부’를 결성, 서울시청 앞 광장에 1만명이 모여 함께 웃는 행사를 열어 분단국가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했던 것도, 30일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서려 했던 것도 모두 웃음이 가진 국가경쟁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김씨는 1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자양동 자택 인근 H헬스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치고 러닝머신을 이용해 운동을 한 뒤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향년 46세. 유족들은 1999년 3월 그가 가톨릭대 의대와 한 약속에 따라 병원 측에 시신을 기증키로 했다. 전 국민을 ‘웃음 바이러스’로 감염시켜 ‘행복 병’에 걸리게 하겠다던 김씨. 그는 우리에게 웃음과 동의어인 희망을 남기고 떠났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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