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형곤씨는 마흔 여섯 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가 떠났지만, 시사 풍자 코미디의 새 장을 열고 시원한 웃음을 선사한 사랑받는 희극인이었다.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씨는 80년 동국대 국어교육과에 재학 중 TBC 개그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코미디언의 길에 나섰다. 80~90년대 ‘공포의 삼겹살’로 불리며 KBS ‘웃는 날 좋은 날’ ‘유머 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5공 시절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서 시사 풍자를 시도,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이 코너에서 기득권층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꼬집으며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이후에도 ‘탱자 가라사대’ ‘김형곤쇼’ 등으로 풍자 코미디의 맥을 이어갔다. 이런 공로로 김씨는 KBS코미디대상,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 공로상을 수상했다.
김씨는 극단 ‘곤이랑’을 설립, 연극 ‘등신과 머저리’ ‘병사와 수녀’, 모노드라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뮤지컬 ‘왕과 나’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1인 스탠딩 코미디 ‘엔돌핀 코드’를 공연하고 수익금 2,500만원을 백혈병소아암협회에 기부했으며 올해 1월에는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 공연에 나서 이역만리 동포의 시름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말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게릴라극장을 인수해 올해 4월 ‘병사와 수녀’를 시작으로 뮤지컬 시장에 본격 진출하려던 참이었다.
사업 수완도 뛰어났다. 성인 전용 ‘코미디클럽’을 경영하고 여의도에 국내 첫 유기농 전문 음식점을 열었으며 30㎏ 감량 경험을 토대로 전남 신안군의 한 무인도를 국제적인 다이어트 섬으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99년에는 자민련 명예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가 시련을 겪기도 했다. 2000년 무소속으로 서울 성동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혼의 아픔을 맛보았다.
김씨를 잃은 코미디계는 큰 슬픔에 휩싸였다. 11, 12일 삼성서울병원 빈소에는 구봉서 이용식 서세원 등 선후배 동료 코미디언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김미화씨는 “고인의 아이디어는 독보적이고 창의적이었다”며 안타까워했고 심형래씨도 “정말 재미있게 코미디를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 일찍 갔다”며 눈물을 흘렸다. 영국에 유학 중인 아들 도헌(13)군은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줄 알고 12일 귀국했다가 병원에 도착해서야 김씨의 죽음을 알아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생전의 약속에 따라 김씨의 시신은 가톨릭대 의대에 기증되며 유족들은 그의 유품을 화장해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장키로 했다. 청아공원은 후배 코미디언으로 고인과 각별한 사이였던 고 양종철씨를 포함해 김무생 이은주 길은정씨 등이 영면해 있는 곳이다. 장례식은 13일 오전 7시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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