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는 주말과 일요일 내내 삼청동 공관에서 두문불출했다. 드나드는 사람도 거의 없어 공관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 정적(靜寂)에는 뭔가를 결단하기 직전의 긴장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 총리는 10일 저녁 당정청 수뇌부 모임에서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어서 고통스럽다”면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취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고민하는 뉘앙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총리의 사퇴는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분위기다. 주변의 분위기도 그렇다.
한 측근은 12일 “거취에 대해 우리가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총리가 자리에 연연할 분이냐”고 반문하면서 “억울하다고 강변할 스타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총리의 한국노총 기념식 불참(10일)에 대해서도 “청와대에서 유임론이 나오고 본인도 버틴다는 보도가 나오자 상당히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면서 “물론 내기골프 의혹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총리와 가까운 여당의 한 중진도 “성격상 떠밀리는 선택을 할 리가 있느냐”면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실 역시 사퇴에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총리실은 청와대 등 여권 내에서 유임론이 대두될 때만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티기 논리’를 설파했지만 내기골프 의혹이 터진 이후에는 사실상 체념한 상태다. 임재오 정무수석 등 핵심 비서진들은 일요일 청사에 출근, 긴급회의를 갖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분위기는 침울했다.
이 총리가 사퇴 의사를 굳히는데 한 가지 고려할 변수가 있었다. 지방선거 출마 장관들이 더 있어 이들의 자리를 채우는 보각 때 각료추천을 해야 하는 문제다.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도 사석에서 “총리가 당장 그만둔다면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사퇴를 마냥 미룰 수도 없었다. 여론도 악화되고 이 총리의 강직한 이미지도 상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정치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 법적으로는 당분간 총리직을 수행하다가 각료추천을 하고 물러나는 수순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이 귀국하면 면담을 하고 사퇴를 밝히느냐, 아니면 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고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먼저 사퇴 입장을 밝히느냐는 시기 선택이 남아 있다. 여권 내에서는 이 총리의 성격상 직접 본인이 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노 대통령 귀국 전에 사퇴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많은 편이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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