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직전 한반도를 달궜던 뜨거운 주제가 있었다. 세계 동물 보호 관련 단체들은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기 때문에 전 세계가 한일 월드컵 개최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개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가 아니라 일부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다는 이유로 구미 선진국가 사람들로부터 미개인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한국인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주었다.
문화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다양성 및 보편성에 대한 해석이 있다. 개고기를 먹느냐의 문제는 문화적 차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지만, 보편성의 시각에서 보면 개를 먹는 다는 사실이 특히 동물 보호론자에게는 동물학대로 보인다. 이렇게 개고기라는 단순한 문제 하나만으로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효과적인 설득은 동물 보호론자의 시각에서 우리의 개고기 전통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동물 보호론자들의 시각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즉, 논의의 출발점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있다. 이는 성장 배경, 교육 환경, 경험 등이 사람마다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의 대상이 국경을 넘어 국제 무대로 확대될 때, 이 점이 크게 부각된다.
필자가 대학시절에 배운 정치학 수업 교재의 내용이다. 에밀리는 부자 백인 소녀였고 프라이데이라는 흑인 하녀를 데리고 있었다. 에밀리의 독백이다. “지난주 프라이데이에게 내가 입던 벨벳 원피스를 줬어. 그리고, 프라이데이가 아프다 길래 오후 2시쯤 집으로 돌려보냈고 틈나는 대로 영어를 가르쳐 주지. 난 정말 마음이 좋은 아이야.” 다음은 하녀 프라이데이의 독백이다. "지난주 에밀리는 자기가 입던 옷을 나에게 주었어. 에밀리가 싫어하는 옷이지. 너무 머리가 아파서 일을 할 수 가 없는데도 오후 2시까지 부려 먹더라니 깐. 그리고, 답답한지 나에게 영어를 배우라고 다그쳤어. 에밀리는 시간이 많아서 영어를 잘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나는 너무 일에 지쳐 책을 볼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잘난척하는 꼴이란.”
여기서 에밀리는 프라이데이의 생각을, 프라이데이는 에밀리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각자의 계급과 환경, 경험에 따라 같은 일을 이렇게 180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다음은 미디어의 영향이다. 신문 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방송 뉴스는 심도 깊은 분석 보다는 화상을 통한 강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남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주관적인 생각을 끌어내기 보다는 시청각 효과로 획일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려 한다. 따라서, 청취자들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을 놓고 이의를 제기하기 보다는 무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서방 선진 8개국(G8) 이 아프리카 극빈국에게 부채탕감과 함께 500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방송 보도의 경우, 굶주린 아이들, AIDS, G8정상회담이 화면에 나갔다. 방송은 화면을 통해 아프리카는 선진국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정말 아프리카를 선진국들이 도와야겠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를 도와야 할까? 차라리 돕지 않는 게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현대 민주사회는 다원주의의 원칙 아래 만들어졌다고 흔히 얘기한다. 서로 주장이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 또 미디어를 무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그 내용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 다른 계층, 다른 세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국제적 의사 소통) 환경에서는 남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획일주의적 사고는 반드시 버려야 할 대상이다.
사고의 다양성을 간과했을 때, 우리의 영어는 친구 사귀는 정도,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하는 정도로 그치고, 정작 어떤 주제를 가지고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첫 단추가 중요하다. 그리고, 첫 단추는 단순한 의사 소통이 아닌 생각을 담은 영어가 되어야 하고, 그 저변에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한다.
/윤태형ㆍ청소년 대상 영자신문 영타임스(www.youngtimes.co.kr)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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