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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탐구' 동인들 "순문학이 자본주의 뒤통수 쳐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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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탐구' 동인들 "순문학이 자본주의 뒤통수 쳐보자고"

입력
2006.03.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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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탐구’ 동인들의 대화는 이 시대 인문주의의 ‘수상한’ 근황에 대한 성토와 자성과 대안 찾기로 이어졌다. 급기야 동인들은 학창시절 군만두 안주에 고량주를 아껴 마시며 시대와 문학을 논하던 대학로의 중화요리점 ‘진아춘’으로 자리를 옮겨 거나해질 때까지 대화를 나눴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지만 무엇 때문에 버는 줄을 몰라. 그걸 가르쳐줘야 하는 게 인문학이잖아.

=요즘은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나서는 시대야.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기도 승객을 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지.

=그 사람들 잘못만도 아니야. 사회 구조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대학이 인문학 교수들에게조차 좋은 논문 쓰는 것보다 연구비 많이 따오라고 요구하거든.

=김현 선생 말씀이 생각나는군. ‘(인)문학은 쓸 데 없는 거니까, 그게 바로 쓸 데 있는 것’이라고 하셨잖아.

=약 5년 전만 해도 전국 대학에 문예창작학과가 70개가 넘었어. 그런데 최근에는 상당수가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곳은 점차 이름을 바꿔다는 추세야. ‘문화콘텐츠학과’라나 뭐라나. 광고 카피 가르치고, 방송 극작 가르치고, 뭐 그런 식이야. 인문학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편입되는 상징적인 사례지. 요즘 대학에 가봐. 문학 동인은 고사하고 동아리조차 씨가 말랐어.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시나리오나 드라마 대본 하나 잘 써서 뜰 궁리만 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상상하니 끔찍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운전자 없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인 거네.

(이 대목에서 대화는 ‘언어탐구’ 시절의 추억담으로, 이인성씨가 초를 낸 새로운 문학잡지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시한) ‘언어탐구’ 2호를 낼 때 시골에서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었는데, 소설(실험소설 ‘곡예의 끝’)을 써놓고 내가 뭘 썼는지 아리송한 거야. 그래서 우편으로 원고를 보내면서 ‘동인지에 그 작품은 안 실어도 좋다’는 편지를 썼지. 그랬더니 이인성의 답장이 뭔지 알아? ‘우리가 뭘 쓰는 지 알면 왜 쓰겠소!’

=(김연신) 나도 해외 체류시절에 시를 쓸 게 안 보인다고 했더니 저 자(이인성)가 뭐라는지 알아? ‘시인의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다시 쓴 시가 첫 시집의 표제작 ‘시를 쓰기 위하여’잖아. (이인성씨는 김씨의 말에 ‘나도 모르는 소리’라며 겸연쩍게 얼버무렸다.)

=이인성이 자기 글도 쓰고 그런 일(새 문학잡지)도 벌일 궁리하느라 학교를 그만둔 거잖아. 이제 사랑방(이인성 작업실)도 마련됐으니 자주 만나자. 분기에 한 번이라도 모였으면 좋겠다.

=그래, 누군가는 운전석으로 돌아가야 해. 우리 선배들은 그랬는데 말이야.

=국사학계에 ‘역사학보’라는 게 있어. 그 학보에 글이 실리면 사학자에게는 가문의 영광이야. 다시 말해 거기에 ‘통과된 언어’라고 하면 어떤 절대성을 얻는 거지. 우리나라엔 그만한 권위를 지닌 잡지도, 학회지도, 학술지도 드물어. 국문학계에는 아예 없고. 이게 우리의 문화적 낙후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지.

=순문학이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는 추세의 뒤통수를 치는 거야. 이를테면 순수성의 반란이지. ‘언어탐구’의 힘과 열정으로 간다면 못할 것도 없어. 당시처럼 열린 동인의 형식으로 말이야.(‘언어탐구’ 창간호 취지문은 “우리는, 각자의 작업이 자유롭게 발표될 수 있는 ‘열려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창간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문구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하지 마라’고 유언하신 이유가 뭐겠어. 제대로 된 문학상 하나 없는 뻔한 문학 판에 당신 이름 붙인 문학상 보태기 싫으시다는 것 아니겠어.

=(김연신. 그는 시인이자 한국선박운용 사장이다.)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한 마디 보태면, 돈 버는 원리는 간단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면 사회는 고마워서 돈으로 보상한다는 거야. 운전자가 없는 시대에 운전자로 나서면 뜻 있는 승객은 차비를 내고 박수를 치지. ‘선데이서울’도 그 시절에 꼭 필요했던 잡지였어. 돈 못 버는 원리? 그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고 덩달아 나서는 거야.

=보나마나 그 잡지, 글 싣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렵고, 팔기도 어려울 게 확실시 되는 군.(함께 웃음)

=문학도 상품이 된 시대잖아. 고급도 있고 저급도 있고, 그 중간 것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고급이 없어.

=이 시대의 평균주의가 문제이기도 해. 평등주의가 아닌 평균주의. 어려운 글을 쓰면 왜 못 알아듣는 어려운 글을 쓰냐고 비난해. 누구나 읽고 즐길 수 있는 문학도 있어야 하고, 보통 사람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문학도 필요한 거잖아.

=문학의 다양성과도 통하는 이야기지. 좋은 추리소설, 좋은 심리소설, 좋은 연애소설도 더 나와야 해. 당연히 더 고급스러운 순문학 소설도 필요하지. 우리 ‘언어탐구’의 정신 같은 소설 말이야.

=그러고 보면 30여 년 동안 변한 게 별로 없네. 세상도 그렇고, 우리 생각도 그렇고.

=그래, 정말 그래.

◆ '언어탐구' 동인 중 등단한 사람들

권오룡(평론가) 한국교원대 불어과 교수

김석희(소설가, 번역가)

김연신(시인) 한국선박운용 대표이사 사장

송 전(연극평론가) 한남대 독문과 교수.

심재상(시인) 관동대 불문과 교수.

이동하(평론가) 서울시립대 국문과 교수.

이인성(소설가) 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최시한(소설가)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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