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소설가 이인성(53)씨의 작업실. 김석희(54ㆍ소설가, 번역가) 김연신(54ㆍ시인, 한국선박운용 대표이사) 최시한(53ㆍ소설가,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씨가 모였다.
다들 1970년대 초ㆍ중반 학원 문학을 주름잡았던 이들이고, 대학시절 문학 동인지 ‘언어탐구’로 기성 문단을 서늘하게 했던 주역들이다. 모임은 최근 서울대 교수직을 용퇴한 이인성씨의 작업실 집들이 겸, 격려 겸 마련된 자리였는데, 마침 올해가 ‘언어탐구’ 종간호를 낸 지 만 30년이 되는 해라는 점도 동인(動因)이 됐다.
‘언어탐구’는 이인성씨 주도로 74년 11월 창간호를 냈다. 서울대 불문과 2학년이던 이씨는 그 해 대학신문사가 주관하는 ‘대학문학상’에 소설 ‘나만의, 나만의, 나만의’로 당선됐다.(같은 해 시 부문 당선자가 김석희씨다.) “상금으로 친구들과 술 마시다 문득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싶더군요.” 그 일이 바로 ‘우리 문학을 해보려’는 동인지 발간이었다.
4ㆍ19세대인 김현, 김승옥 등이 대학시절 내던 ‘산문시대’ 이후 단과대별 문학회지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동인지는 없던 시절이었다. 쓰고 남은 상금에 아르바이트 월급을 보태고, 녹음기며 시계를 전당포에 맡겼다. 경기고 은사였던 김원호(66ㆍ시인) 선생께도 손을 벌려 5,000원을 더했고, 당시 출판사를 하던 조태일(시인ㆍ99년 작고)씨가 실비로 창간호 500부(비매품 한정판)를 찍어줬다.
“기성 문단의 폐쇄성을 벗어던지려는 젊은 작가들의 패기를 토대로 ‘언어 조건과 자유 의식 사이에서 언제나 긴장해 있어야 하며, 삶 전체를 포용하는 철저하고 치열한 언어의 난투장’”(평론가 정혜경의 ‘이인성론’에서)이 만들어진 것이다. 훗날 김정환 시인은 “전후의 기성 문예지들보다 내용이 오히려 고급스러웠다. 신화적이었다”고 평했다.
‘언어탐구’는 76년 5월, 3호를 끝으로 종간한다. 원년 멤버였던 김연신씨가 75년 시위를 벌이다 제적돼 군에 강제징집 되는 등 상당수 동인들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어탐구’의 뿌리는 80년대 초 이인성ㆍ이성복ㆍ정과리씨가 주축이 돼 만든 ‘우리세대의 문학’으로, 이후 ‘우리 시대의 문학’과 ‘문학과 사회’ 1기 동인 활동이라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이씨는 당분간 자신의 글(소설)을 쓰겠지만, 나중에 새로운 잡지를 해볼 생각이다. “지금 문예지들은 교양 수준이잖아요. 그게 아닌, 골수 문학을 추구하고 싶어요. 첨단의 실험과 전위의 문학 잡지요.” 이씨의 말은 바로 30여년 전 ‘언어탐구’의 창간 정신이다. 종간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날 모임은 금세 ‘창간 기획 모임’으로 변질(?)됐고, 살짝 달뜬 대화는 밤 늦도록 끝없이 이어졌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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