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이 서면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금융정책의 정도.”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가 9일 오래된 과제였던 양적완화정책의 해제를 결정한 후 던진 첫마디이다. 일본의 한 신문은 이를 일본은행의 ‘독립선언’이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경제의 위기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5년전 도입한 양적완화는 그 동안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경기를 회복시키는 등 막중한 역할을 수행했다.
초저금리를 강력하게 유지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 정책은 중환자에게 사용한 모르핀같이 금융을 마비시켜 시장의 정상화를 저해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의 자살책’이라는 혹평까지 들어가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정책을 도입한 일본은행은 “여건이 된다면 언제든지 해제하겠다”는 각오로 일해왔다.
그러나 이렇게 이른 시기에 해제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시기상조론’을 앞세운 정부 여당의 반대가 강력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지난 6일 국회에서 “해제한 후 실패했을 경우 다시 되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한 것은 의미심장했다. 결국 일본은행은 이 같은 압력에 동요하지 않고 치밀한 준비와 투명한 절차를 거쳐 자신들의 독립적인 권한의 행사를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부 여당에게 휘둘린 역사가 있는 일본은행이 절차적 독립성을 확보한 것은 1998년 일본은행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이다. 이번에 양적완화의 해제 과정에서 일본은행은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 뿐만이 아니라 이를 지키려는 의지와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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