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국민은 스크린쿼터 문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스크린쿼터로 대표되는 문화영역뿐 아니라 환경, 보건, 기타 공공서비스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중앙ㆍ지방정부의 정책결정과 집행, 민주적 입법절차, 주체적 사법체계 운영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틀 자체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비경제적이며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영역에 미칠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의 분쟁해결 조항은 한 나라의 환경, 보건 공공정책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기반을 둔 다국적기업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중재조항을 이용해 다른 당사국의 환경정책 등에 이의를 제기하고 악영향을 미쳤던 일련의 사건들에서 잘 드러난다.
NAFTA의 환경 관련 예외조항은 외국인 투자자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는 기본원칙과 상충되는 환경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가능한 것처럼 명시하고 있다. 투자 관련조항에도 환경정책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으며, 부수적인 협약도 마련돼 있다.
해당 정부들은 협약 체결 이전에 앞의 사실을 들어 자국민들에게 NAFTA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중재조항에 따라 외국 투자자는 자국민이 제기할 수 없는 환경 및 기타 공공정책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더구나 중재절차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실제로 몇 해 전 멕시코의 지방정부가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한 미국기업의 유독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건축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기업은 NAFTA의 중재판결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1,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또 다른 미국 기업은 캐나다 정부가 환경 보호,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MMT라는 연료첨가물의 사용을 금지한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기업은 중재판결에 이르기도 전에 캐나다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1,3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해당 정책도 철폐하도록 하는 결과를 얻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맞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사실은 환경, 보건 등은 유명무실하나마 NAFTA 예외조항에 포함돼 있지만, 문화는 아예 예외조항에서조차 제외됐다는 점이다. NAFTA의 부속조항은 앞서 체결된 미ㆍ캐나다 FTA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 대해서는 '문화산업'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국이 자국의 문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들에 다른 국가가 보복조치를 취하는 것도 허용되고 있어서 이런 부속조항은 유명무실한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자국 문화의 수호를 위한 아무런 예외조항도 NAFTA에 명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협상전문가들과 그들에게 이론적·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두뇌집단들을 앞세운 상대방을 앞에 두고 있다.
한미 FTA를 무조건 빨리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 그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한번 던지고 나면 영원히 다시 얻을 수 없는 패는 없는지, 꼭 단기간에 게임을 끝내야 하는 것인지, 게임이 끝난 후 우리 국민의 실질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동호 미국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