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가 10일 오전 한국노총 60주년 기념식 참석 일정을 돌연 취소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정 취소는 대개 공직자들이 마음 속으로 거취를 결정하고 주변을 정리할 때 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총리실의 해명도 그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최병환 총리 공보비서관은 “여러 논란이 있는 가운데 대외 행사에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 총리가 논란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파문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비중있는 외부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퇴를 시사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닌 대목이다.
더욱이 전날(9일)까지만 해도 이 총리의 행사 참석은 예정돼 있었다. 불과 행사 시작 1시간 전에 일정을 취소한 것은 뭔가 중대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 결정적 원인은 이날 아침 터져나온 내기 골프 때문으로 보인다.
3ㆍ1절이자 철도파업 첫 날 골프를 쳤다는 부적절한 처신은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 해도, 내기 골프는 공직자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것이어서 대충 덮기가 어려운 사안이다. 물론 40만원 대의 내기 골프는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양해되지 않는 상황은 이 총리에 대한 민심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강직한 이 총리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고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국노총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보인다.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은 “여론을 의식해 외부 일정을 취소한 것 뿐이지, 회의 등 내부 일정은 예전처럼 소화하고 있다”면서 “총리의 생각이나 입장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수석이 버틴다고 해서 그린피 대납에 이은 내기 골프의 도덕성 시비가 가라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총리실의 분위기도 이 수석의 논리와는 다르다. 한 관계자는 “총리가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중요한 현안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기 때문에 큰 미련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당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총리님이) 결정을 내릴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방선거를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총리가 사퇴를 결심했음을 암시하는 언급들이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삼성서울병원을 다시 찾았다. 골프 파문 이후 더욱 악화된 건강 문제도 거취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