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에게 물려본 경험이 있다면 그 상처의 가려움을 쉽게 잊지 못한다. 살갗만 가려운 게 아니다. 살 속의 뼈까지 가려워서 긁어도 소용이 없다. 쉽게 가시지도 않고 며칠 지속된다.
한 마디로 무시무시한 벌레다. 빈대는 짝짓기도 무시무시하게 한다. 암컷의 생식기는 다른 곤충과 비슷한데 수컷의 그것은 길고 뾰족하다. 암컷 생식기의 내벽을 뚫고 들어가 혈액 속에 정자를 풀어놓는다. 배우자를 벽에 붙이고 몸을 관통하도록 사정 없이 핀을 꼽는 식이다. 소름이 돋는다.
암컷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감수할까. 수컷은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지도, 사나운 무력을 쓰지도 않는다. 다름 아닌 ‘선물’로 유혹한다. 암컷은 먹을 수도 없는 무화과씨(저자가 살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선물 받고 마음이 혼미해진다. 곧 벌어질 행위를 생각하면 너무나 우아하고 고상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유혹’은 제목 그대로 모든 생물의 기발하면서도 치열한 눈맞추기에 대한 이야기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는 명제에서 시작해, 생명의 기원은 물론 진화까지 ‘유혹’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풀어 나간다. 의상, 광고, 정치, 문학, 음악 등 인간의 모든 문명적 행위도 마찬가지다. 눈맞춤 이후의 짝짓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학적으로 접근한 생명체의 성(性)에 관한 담론이기도 하다.
저자가 열거하는 유혹의 요소는 색깔, 냄새, 행위, 소리, 맛 등 무수히 많다. 생명체는 이 중 하나 혹은 여러 가지를 선택해 짝을 찾고 번식한다. 홍학의 붉은 깃털, 곤충의 페로몬, 풀벌레의 울음 등등의 기능은 다름 아닌 성적 유혹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유혹의 능력에 있어 최하위의 자리에 인간을 놓고 있다. 사실 다른 생명체가 갖고 있는 유혹의 수단이 인간에게는 별로 없다. 옷을 입게 되면서 그나마 사라졌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몸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남으로부터 빌려서 유혹의 도구를 마련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물이다. 빈대의 구애법이 수준 높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행위를 닮았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왜 이토록 지난하게 유혹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복제라는, 쉽고도 효율적인 방법도 있는데…. 진화의 단계를 살펴보면 생물의 유전자는 복제를 통해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5% 이상의 생물이 유혹과 짝짓기라는 피곤한 행위를 선택했다. 저자는 섹스가 복제를 대신한 이유로 성을 통한 다양성의 창조를 든다. 서로의 유전자를 섞어 환경의 변화에 더욱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은 이미 수억 년 전 복제에 대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며 생명 복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프랑스국립농업연구소 소장을 지낸 저자 클로드 귀댕은 식물학 박사이면서 특히 미생물학에 밝다. 책의 초반에 전문용어와 화학용어가 많이 등장해 조금 어리둥절하지만 주석을 단 것 빼고는 굳이 머리에 담으려 애 쓸 필요는 없다. 저자는 어원학(語源學)을 공부한 시인이기도 하다. 동식물의 이름의 유래, 유혹적 행위에 대한 용어, 낮 뜨거울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재치 있는 묘사 등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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