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말말말

입력
2006.03.11 00:03
0 0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말을 침에 이겨, 구워 만든 벽돌로, 남의 가슴을 들이치는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풍문이 있은 지는, 하매 오래 전인데, 그런 후부터 오늘까지, 깜냥으로는 모두, 자기가 ‘말놀이의 명수’라고 믿어 그랬겠지만, 그런 자들이, 사람의 말의 무기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 그것도 좀 알아보려니와, 뭣보다도, 그 벽돌 굽는 명인과 ‘말놀이’를 하여, ‘열엿새달’ 같다고 이르는, 외동딸의 손을 잡아, 그 명인의 자리에 앉아 보겠다고, 글쎄 그런 목적으로, 모험을 떠나는 일이 끊이지 않고 계속돼 오거니와, 문제는 그럼에도, 떠나는 자만 있고, 돌아오는 자가 없다는 데 있다.’

●혀끝의 칼로 마음 후비는 지도층

《칠조어론》의 한 구절을 이리 어쭙잖게 패러디했다고 해서 소설가 박상륭 선생이 필자의 창의성의 빈곤과 글재주의 박약함을 개탄하시기야 하겠지만, 표절이라 굳이 타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도움 되는 바 하등 없으면서 그나마 가래침으로 이겨 잘못 구운 벽돌이 너무 많아졌다는 풍문이 있은 지가 하매 오래 된 지라,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댓글류의 못 마땅함이야 이제 실명제니 뭐니 해서 어지간히들 아는 터이지만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들이 만든 말 벽돌들이 얼마나 부실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불량품인지는 아무리 일러 주어도 계속 만드는 자만 있고 만들기를 그치는 분이 없다는 데에 답답함을 같이 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들리기로는 얼마 전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지방 당원 교육 행사에서 “김정일이 껴안아 주니까 치매 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 게 6ㆍ15 선언”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김용옥 순천대 석좌교수는 라디오 방송에서 “자리에 있을 때 이런 거(새만금 개발 사업) 하나라도 잡아놓지 않으면 그 사람(노무현 대통령)은 생태를 운운할 자격도 없고 저주 받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냥 “6ㆍ15 선언은 아주 잘못됐다”거나 “새만금 사업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장 중단해야 한다”라고 하면 될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더 자극적일 수 있을까 하는 일념에서 해 본 실언이겠다.

노무현 대통령도 “학교 선생님이 사회 변화에 가장 강력히 저항하는 게 걱정이다. 그 밖에 (저항하는 집단이) 두세 개 있지만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안 하겠다”고 했다니 아직까지도 당혹스럽다. 교원평가제를 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유야무야해 놓고는 뒤늦게 ‘교사들이 못됐다’는 식으로 푸념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반감을 유발할 것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국정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기야 이런 식으로 듣는 이들의 기분만 상하게 하고 현실의 개선이나 변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 벽돌들이야 제조자들의 면면도 그렇거니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요즘 이상한 말 벽돌 가운데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것이 단연 주목된다. 그는 지난 4일 구치소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해 자살을 기도한 여성 재소자 가족을 찾아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죄송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재소자 성추행, 불미스럽기만한가

‘불미스럽다’는 단어가 들으면 정말 섭섭해 할 일이다. 재소자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교도관이 심한 성추행을 했다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장관이 가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할 일도 아니다. 당장 신속히 진상조사를 해서 관련자를 처벌하고 제도적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는 게 먼저다.

장관이 이런 이상한 이벤트를 하는 사이 구치소는 “가족 문제를 비관한 것 같다”, 법무부는 “성적 괴롭힘으로 속단하긴 무리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강정구 교수 구속 문제에는 그리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장관이 그보다 훨씬 중한 인권유린 문제에는 어떻게 이토록 둔감할 수 있었을까?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