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극복키 위해 2001년 도입한 경기부양책인 금융의 ‘양적완화정책’을 9일 해제했다.
일본 경제의 정상화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결정은 향후 채권 금리의 상승 등 국제 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세계 금융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후쿠이 도시히코(福井俊彦)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열린 정책위원회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양적완화의 해제를 제안, 찬성 다수로 통과시켰다. 후쿠이 총재는 “물가 추세를 상징하는 전국소비자물가지수(CPI)가 4개월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디플레이션 극복 조짐’을 해제 이유로 꼽았다.
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도입한 양적완화의 핵심은 시장에 싼 값에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돈을 풀어 장기 불황과 동반한 물가 하락을 막기 위한 이 정책은 0.0%에 가까운 초저금리 정책과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세계 금융시장의 촉각이 ‘제로금리 해제’에 쏠리는 가운데 일본은행은 이날 “당분간은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상승이 이어질 경우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채에 의지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울러 2000년 8월 경기 침체가 끝났다는 판단 아래 18개월만에 금리를 다시 올렸다가 일본 경제가 다시 추락했던 ‘아픈 기억’도 일본은행을 신중케 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는 이날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는 자신감에 따른 것”이라며 “금리 인상 시기는 일본은행이 물가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밝혔다. ‘제로금리’를 유지, 수용 가능한 수준까지 물가 상승을 내버려두면서 시장에 돈을 계속 풀어주는 ‘현실적 입장’을 취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양적완화의 해제는 기본적으로 시중에 풀었던 자금을 거둬들이는 긴축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금리와 엔화의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본 국민들의 해외 채권 투자가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한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면 환율 등락 등 국제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에 최근 유럽중앙은행(ECB)까지 가세한 상황이어서 일본 금리까지 오르면 “세계 경제 ‘빅3’가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 양적완화 정책이란
양적완화 정책은 ‘제로금리 정책’으로도 불린다. 일본은행은 2000년 8월 0% 금리를 해제했지만 물가 하락이 심화하자 2001년 3월 급히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정책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일반적인 금융정책 대신, 금융 기관이 여유자금을 일본은행에 당좌예금으로 맡겨 양(量)을 조절한다는 정책이다.
일본은행은 당좌예금이 목표에 달하도록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를 사들여 시장에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한다. 당좌예금은 이자가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이렇게 받아들인 돈을 기업 등에 쉽게 대출토록 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도입 당시 당좌예금 잔고 목표는 5조엔 정도였지만 9ㆍ11 테러 등으로 경기불안이 심화할 때마다 늘어나 2004년 1월 30~35조엔까지 확대됐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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