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1906~65) 선생이 1942년 독일에서 만주국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자작곡 ‘만주국’을 지휘하는 필름이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는 안 선생 탄생 100주년(12월 5일)으로 6월에 기념연주회, 11월에는 그의 삶과 음악활동을 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예정돼 있다. 지난달에는 자필 악보 2건까지 새로 발견된 데다 독일 월드컵 응원가로 애국가의 록 버전까지 나온 마당이어서 착잡한 마음이 더하다.
만주국은 일본이 만주사변을 통해 중국 북동부를 점령하고 1932년에 세운 괴뢰정권으로 중국 경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이러한 만주국의 창립을 축하한다는 것은 13살 때 3ㆍ1 운동에 참가해 퇴학 당하고 애국가를 작곡한 음악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베를린의 영상자료관에서 필름을 찾아낸 유학생은 전문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애국가 선율이 들어간‘한국환상곡’의 두 선율이 ‘만주국’에 거의 그대로 나타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를 작곡한 인물의 친일 행위 문제에 대해 사실을 사실대로 가감 없이 밝혀야 한다고 본다. 안 선생이 독일에 체류하던 기간(1938~45)은 나치 독일의 광기가 몰아치던 시기였다. 스승이자 강력한 후원자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나치에 협력했고, 추축국의 일원인 일본의 천황을 위해 ‘일본 축전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독일 정권의 요구를 받고 작곡한 것인지, 일본 관계자들의 요구를 직접 받고 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나서서 작곡과 지휘를 제안한 것인지 등등도 상세히 규명해야 한다.
그런 연구를 통해 이 사안이 안 선생의 총체적인 모습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11월 심포지엄까지 관련 학자들이 치밀한 연구에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애국가 교체 문제 등은 그 다음에 논의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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