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런 남자였다. 망나니 같은 산발로 타령을 읊던 줄타기 광대의 인상이 하도 강렬해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언제나 책 많이 읽은 도시남자의 하얗고 해사한 얼굴이었다.
‘왕의 남자’ 감우성이 SBS가 27일부터 ‘서동요’ 후속으로 방송하는 월화드라마 ‘연애시대’의 주인공을 맡아 4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다. 이혼 후에야 사랑을 깨닫는 ‘이상한 연애’를 그린 ‘연애시대’는 영화감독 한지승의 연출로 절반 이상을 사전제작하는 영화 같은 드라마. 이혼 후에도 아내의 곁을 맴돌며 뒤늦게 사랑을 확인하는 유머러스하고 도회적인 북마스터 이동진 역을 맡아 손예진과 연기호흡을 맞춘다.
‘왕의 남자’가 관객 1,180만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역대 최고흥행작의 타이틀을 거머쥐었기 때문에 영화로부터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던 그가 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뭘까. “드라마 ‘현정아, 사랑해’의 실패가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어요. 작품은 좋았는데 결과가 그렇지 못해 찜찜한 기분이었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왕의 남자’를 잊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허둥지둥 제작되는 여타 드라마와 달리 제작여건이 여유로운 점도 그의 마음을 끌었다. “멜로는 질려서 더 이상 안 하려고 했거든요.
제가 올해 서른 일곱인데 이제 순수한 기운이 다 빠져나갔는지 여배우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눈빛으로 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멜로 연기를 기술적으로 하고 싶지도 않고…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혼 후의 심리적 갈등을 재미있게 풀어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역시 ‘왕의 남자’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멜로만큼 질릴 법도 하건만 그는 ‘왕의 남자’ 얘기가 나오자 질문 없이도 술술 얘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왕의 남자’가 요구하는 정도를 넘어서지도, 거기에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한 많은 분석과 평가가 나왔지만, 가장 의미있는 것은 거대 제작사와 거대 매니지먼트사가 아니면 흥행이 안 된다는 공식을 ‘왕의 남자’가 깼다는 사실이지요.”
그는 ‘왕의 남자’의 영광을 ‘꿈의 기록’ 1,000만 관객이 아닌 ‘관객과의 직거래’를 통해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찾았다. “그 꿈의 기록을 다음에도 또 달성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애초 ‘왕의 남자’도 300만명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저는 300만명에 꿈을 걸어요. 오히려 관객이 직접 냉정하게 작품을 알아봐주셨다는 게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참을 수 없는 세속의 질문 하나. ‘왕의 남자’의 빅 히트로 감우성이 받은 보너스는 얼마나 될까. “솔직히 보너스를 기대 안한다고는 할 수 없죠. ‘왕의 남자’는 제가 유일하게 러닝개런티를 안 맺은 영화거든요. 사실 열받는 것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이만큼의 영광, 이만큼의 사랑을 받았는데, 제가 얻은 게 얼마나 많은데 뭘 더 바라겠습니까. 웃자고 해보는 행복한 불만이죠. 그래도 감독님이 한 턱 쏘시기는 할 걸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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