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표현에 의하면 이 책은 ‘대중 가요를 위한 첫번째 연서(戀書)’다. 장유정(35)씨의 ‘오빠는 풍각쟁이야’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학문적 엄정함의 연단을 거쳤을 때, 이뤄낼 수 있는 화학적 상승 반응의 표증이다.
서울대ㆍ덕성여대 등지에 출강하며 시간을 쪼개 손과 발로 집필하던 시간의 산물인 책은, 제멋대로 윤색ㆍ변색돼 온 전통 가요의 화려한 남루를 복원한 대가다. 책은 당대 유행의 첨단을 걷던 멋쟁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투쟁을 잊고 이런 카페에 은신하여 ‘에로’를 핥는 그들의 생활은 얼마나 퇴폐적이며 환락적이며 도피적이며 환멸적인가!’(‘실생활’ 1932년 7월호) 책은 대중 가요 발아기에 대한 연구서이면서 독특한 사회 문화사 서적이다.
책을 가능케 한 것은 40매짜리 파일 노트로 10권에 해당하는 자료 뭉치. 20세기 전반 한국의 대중 가요와 관련해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도서관 등지를 뒤져 3년 간 찾아 낸 미공개 기록이다.
유성기 음반, 트로트 가요 본래의 의미, 암흑기의 군국 가요 등에 대한 논의의 원천을 제공한 자료다. 맨 뒤, 63쪽에 달하는 주(註)는 본문에 언급된 내용들이 허투루 나오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최근 잇달아 발간된 대중 음악 관련 서적에서는 찾기 힘든 엄정성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민음in 발행)
저자는 “대중 가요의 힘은 민요의 건강성과 진실을 계승할 때 발휘되는 것”이라며 2002년 월드컵 현장에서 울려 퍼졌던 윤도현 밴드의 ‘아리랑’을 예로 든다. 책은 최신 버전 ‘아리랑’의 전사(前史)를 가능케 한 시간, 구체적으로 말해 1930년~해방의 우리 유행가를 대상으로 한다. 작품에 대한 분석과 시대적 연관은 물론 유성기나 음반 등 대중 가요를 존립케 했던 하드 웨어적 측면까지, 책이 포섭하는 문제 영역은 넓다.
특히 당시 보통 사람들이 즐기던 노래를 재즈 – 트로트 – 신민요 등 세 가지로 장르화시켜 이에 따라 논의를 적극 전개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00년 아들 용진(태아명 똘이)이를 낳고 6개월 동안 집에 박혀, 그 동안 모은 자료를 놓고 책을 구상했죠. 대중 가요에 대한 가벼운 읽을 거리들은 많잖아요. 나는 진지하게 쓰고 싶었어요.” 집에서 몸을 풀던 중 TV 퀴즈 프로를 보고, 물어 물어 찾아 간 원로의 대중 음악 연구자 이근태 씨는 귀중한 음원을 제공하는 등 결정적 도움을 제공했다.
이어 그 음원은 잡음 제거 등 유성기 음반 복각 전문가 양정환 씨의 마스터링 작업을 거쳤다. 부록으로 제공되는 복각 CD는 덕분에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음질로 과거를 불러 온다. 거의 알려지지 못한 노래들이어서 감흥은 더하다.
책은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였던 서대석 교수의 격려에 큰 힘을 입고 있다. 교정 등 실제 작업에 도움을 준 남편 최현재(38ㆍ군산대 국문과 교수), ‘오빠는 풍각쟁이’를 멋지게 불러 주곤 하는 똘이는 후속타를 은근히 재촉하는 눈치라고.
“이번에 쓰지 못한,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묶으면 책 한 권은 족히 돼요. 당시 무대에 열광하던 모습, 팬레터, 오디션의 열기 등 우리 시대와 공유하는 대목이 놀랄 만큼 많죠.”‘황성의 적’(황성옛터), ‘타향’(타향살이) 등 당대의 가요가 현재 북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잘 보존돼 있다는 사실은 통일 한국을 위한 가능성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장병욱 기자 aje@k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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