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김지미는 임권택 감독의 ‘비구니’에 출연하기 위해 26년 연기인생 처음으로 삭발을 했다. 지금이야 연기를 위한 여배우의 삭발이 큰 뉴스가 아니지만, 파격이 죄악으로 여겨질 정도로 보수적이던 당시 분위기에 톱스타의 변신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야심찬 도전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불교 조계종이 “종단을 욕되게 하는 영화”라며 제작 반대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공연윤리위원회 검열에서 13군데나 난도질 당했던 김수용 감독의 ‘허튼소리’(1986)도 불교계의 반대로 제작단계부터 ‘고초’를 겪었다. 많은 사찰이 “왜 하필 파계승 중광을 다뤄 불교계를 욕되게 하느냐”며 촬영을 거부했다.
특정 종교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이유로 제작과 상영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많다. 인간적 욕망에 고뇌하는 예수를 다룬 마틴 스콜시즈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은 상영하는 나라마다 기독교 신자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쳐야 했고, 국내에서는 제작 14년만인 2002년에 겨우 개봉했다.
7일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인사들이 소니픽쳐스 릴리징코리아를 방문해 5월 개봉 예정인 ‘다빈치 코드’의 수입 및 상영 철회를 요구했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것으로 묘사해 기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기총은 영화상영을 강행하면 상영중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조치도 취할 방침이다.
표현의 자유에도 분명 한계는 있다. 종교단체를 포함해 어떤 사회단체와 개인도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영화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기총의 대응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의 한 가톨릭 단체도 ‘다빈치 코드’의 내용 수정을 요구했지만 영화 자체를 전면 거부하지는 않았다.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다빈치 코드’를 탐탐치 않게 여기지만 그저 한편의 영화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제작한 영화를 극장에 걸지 못하는 것은 영화인에게는 큰 아픔이다. 임권택 감독은 ‘비구니’의 중도하차를 “영화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로 기억한다. 기대했던 영화를 볼 수 없는 관객 입장도 서글프긴 마찬가지다. 종교를 지킬 권리도 있지만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고 볼 권리도 엄연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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