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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저항 정신을 강조하는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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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저항 정신을 강조하는 '브이 포 벤데타'

입력
2006.03.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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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미래상을 그린 영화는 현실을 되돌아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만약에 이런 끔찍한 사회가 도래한다면’ 이라는 가정은 호기심과 공포를 유발하면서도, ‘그렇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유발한다.

1981년 보수적인 영국 대처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출간된 동명 그래픽 노블(깊이 있는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다뤄 소설과 유사한 형태를 띤 만화의 일종)을 옮긴 ‘브이 포 벤데타’는 미래 사회를 빌려 현실에서 은근히 이루어지고 있는 억압과 통제를 비판, 자유와 저항의 정신을 설파한다.

2040년 제3차 세계 대전을 거친 영국은 전체주의 사회로 변모한다. 국민의 불안을 발판 삼아 권좌에 오른 셔틀러 의장(존 허트)은 철권 통치를 자행한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되고, 비밀 경찰의 무차별적인 도청과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 성적 취향이든 정치 성향이든 집단의 동일성을 거부하는 자들은 으슥한 밤 수용소로 끌려가 생물 무기 개발을 위한 ‘마루타’로 전락한다.

어린 시절 정부의 폭정에 부모를 잃은 이비(나탈리 포트만)는 밤거리에 나섰다가 우연하게 ‘변종 인간’ 브이(휴고 위빙)를 만나고 그의 체제 전복 계획에 얽혀 든다.

‘브이 포 벤데타’는 극단적인 설정으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불안을 먹고 자라난 파시즘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국민들이 더 큰 문제’라는 브이의 말은 대테러 전쟁의 구호 아래 애국주의로 똘똘 뭉친 현재의 미국 사회에 보내는 경고장으로 읽힌다.

자유는 결국 온갖 억압에 대한 저항과 동의어라는, 자유를 위해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진부하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인간의 고결함과 위엄을 역설하면서도 사사로운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중적인 브이의 정체와 과거를 퍼즐 맞춰가듯 풀어내는 이야기 전개는 밀도 높다. 근사한 비주얼과 지적인 대사로 포장한 외형도 고급 상업 영화의 틀을 무리 없이 유지한다. 하지만 암울한 미래 통제 사회를 묘사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중 ‘빅 브라더’ 이미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은 맥이 빠진다.

가상 공간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을 성찰한 ‘매트릭스’시리즈의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형제가 각색과 제작을 맡은 점도 눈 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매트릭스’처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컴퓨터 그래픽의 향연은 펼쳐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기 전 꼭 알아야 할 사전 지식. 브이가 쓰고 나오는 가면은 1605년 영국 제임스 1세의 절대 왕정에 반기를 들고 의회 폭파를 계획했다가 교수형을 당한 가이 포크스의 얼굴을 형상화 한 것이다. 브이가 전체주의 체제를 뒤집으려 한 11월 5일은 가이 포크스의 거사일. 영국 국민들은 매년 그 날이 되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불꽃 놀이를 즐긴다. 제임스 맥티그 감독. 17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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