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여름부터 8개월간 치러진 스탈린그라드전투는 독일군에 치명적 첫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2차대전의 분기점이 됐다. 양측 전사자가 200만명에 달한 이 참혹한 살상전은 소련여군의 전설을 낳았다.
몸이 작아 은신이 용이한 여저격병들은 나치 야전지휘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스탈린그라드의 백장미’로 유명한 여성 전투조종사 릴리야 리트비야크는 적기 12대를 격추시킴으로써 소련 공군의 최고 에이스 반열에 올랐다. 여성 폭격기연대는 대담한 야간 초저공 폭격을 수없이 감행, 독일군 진지를 초토화해 ‘밤의 마녀’라는 별칭을 얻었다.
▦ 그러나 이는 특수한 경우다. 일찍이 남녀를 동등하게 징집해온 이스라엘군을 포함, 대부분 국가에서 여성을 전투요원으로 활용하는 일은 드물다. 이라크에서 포로가 된 미 여군들도 비전투병과였다.
이런 면에서 우리 여군의 평등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신체적 무리가 따를 수 있는 기갑, 잠수함 등 극히 일부 분야 외에 육군의 보병소대장과 특전대원서부터 해군의 전투함요원, 공군 전투조종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전투병과에 여군이 진출해 있다. 공군 조종사들의 전투기량을 측정하는 공중사격대회에서도 여성이 두드러진 성적을 내고있다.
▦ 올해 해·공군사관학교에서는 4년 전 수석입학했던 여생도가 나란히 수석졸업을 해 화제가 됐다. 특히 해사에서는 우수졸업생 8명 중 절반이 여생도였다. 각 사관학교 여생도 입학정원이 공히 10% 안팎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취다. 군 관계자들은 정원 제한으로 남자들보다 2~3배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여생도들이 기본실력과 자질에서 이미 앞서 있다고 설명한다.
또 이들은 남성문화가 지배적인 군대에서 소수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요컨대 정신력에서도 더 앞서 있다는 것이다.
▦ 전쟁의 개념이 개인의 육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섬멸전에서 하이테크 전략무기로 적 지휘부를 무력화하는 제한적 타격전으로 바뀜에 따라 여군의 활동영역은 더 넓어질 전망이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여군 간부 비율을 현재 2.3%에서 5%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물론 실제 접전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떤 능력을 보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각 군은 현재 전투병과에 배치한 여군들을 예의 주시하며 이런 판단에 필요한 데이터들을 축적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미래 국방력 구축의 성패가 이 우수하고 당찬 여성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도 달린 셈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