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1906~65) 선생이 일제가 세운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 ‘만주국’을 작곡하고 직접 지휘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 자료가 발견돼 그의 친일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이 필름을 찾아낸 독일 훔볼트대 연극학ㆍ음악학 마기스터 과정(학ㆍ석사 통합 과정) 유학생인 송병욱(39)씨는 월간 객석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만주국’의 합창 선율 일부가 애국가 선율이 포함된 안익태의 대표작 ‘한국환상곡’에 그대로 쓰였다며 안익태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송씨가 베를린의 독일연방문서보관소 산하 영상자료관에서 찾아낸 7분여 길이의 이 영상물은 1942년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를 녹화한 것으로, ‘작곡ㆍ지휘 안익태’라는 자막과 함께 합창이 딸린 관현악곡 ‘만주국’의 연주 실황을 담고 있다.
무대 뒷면 중앙에는 대형 일장기가 걸려 있고 그 앞에서 안익태가 지휘하고 있다. 이 필름의 존재는 2000년 3월 KBS가 보도한 바 있으나 ‘만주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송씨는 동영상을 직접 보고 관련 자료를 추적, 그동안 안익태 작품 목록에 빠져있던 이 곡을 확인했다.
송씨의 기고문에 따르면, ‘만주국’의 합창 가사는 일본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가 썼다. 가사 내용은 ‘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고 시작하는 등 일제를 찬양하고 있다.
송씨는 “이 곡의 합창 선율 중 두 개가 ‘한국환상곡’ 의 1954년판 악보 합창 부분에 거의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며 일제 찬양의 선율을 ‘한국환상곡’에 끼워넣은 것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송씨는 “음악학 전공자로서 평소 안익태 선생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나 이 필름을 확인하고 당황했다”며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지만 일단 안 선생의 공과(功過)를 있는 그대로 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자료를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안익태의 친일 논란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그의 스승인 작곡가 겸 지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2차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 천황을 위해 작곡한 ‘일본 축전 음악’을 안익태가 지휘했다는 것은 음악학자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이번에 공개된 필름으로 음악학자들은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졌다. 안익태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계를 추적해온 음악학자 이경분씨는 “안 선생의 행적에 대한 기본 자료가 매우 부족한 상태여서 이 필름만 보고 친일을 했다고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며 “더 많은 후속 연구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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