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변화의 영향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보다 취약한 계층에 심각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을 들 수 있다. 모터리제이션이란 자동차 이용에 의한 생활변화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 특정 인구층에의 불이익적 현상을 말한다.
최근 자유무역협정 체결 확대, 국내 경제자유구역법 시행 등의 영향으로 보건의료체계를 뒤흔드는 쓰나미 급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관련한 의료시장 분야는 타 분야와는 달리 경제적 논리보다는 공공 개념을 우위에 두는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가진 자를 위하기보다 못 가진 자를 중심으로 한 계층 간의 갈등 해소와 같은 사회적 통합을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경제부처 일각에서는 어느 계층을 위한 정책인지 알 수 없는 논리를 앞세워 양극화 해소에 역행하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과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영어로 사회보험의 보험료는 ‘contribution’이라고 하고,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는 ‘premiun'이라고 한다. 두 단어를 통해서도 보험료 성격의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contribution’은 제도의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돈으로, 사회적 위험을 공동체로 분산하기 위해 피보험자가 보험자에게 지불함으로써 공동체의 복지 및 사회 통합에 기여한다. 반면에 ‘premium’이란 보험가입자가 민간보험회사와 자유계약을 맺어 개인적 필요성과 자신의 지불능력에 따라 보험자에게 지불하는 돈을 말한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2003년 현재 전 국민의 15.6%인 4,500만명이 의료보장에서 제외되고 있다. 또 매년 200만명이 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산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 민간의료보험 영역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의료보장 시스템을 갖고 있어 민간의료보험 논의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선진국들도 민간의료보험보다는 공적보장체계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 경제부처 일각에서 추진하는 대로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한다면 남미국가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공적보험은 붕괴되고 ‘부자보험’과 ‘빈자보험’으로 나누어지는 의료 양극화로 계층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의 도입ㆍ활성화를 거론하기에 앞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현재의 60% 수준에서 선진국의 80% 이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의 보장성은 80%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공공의료기관 보급률은 이들 나라가 80%를 상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0%대에 머물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80% 이상으로 확대되면 국민들이 암 등의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민간의료보험에 따로 가입하는 등 의료비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양극화를 막는 길이다.
영국은 사회보장제도 중 보건의료서비스제도를 ‘왕관의 보석’으로 비유하며 세계에 뽐낸다. 우리도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을 80% 수준으로 높여 국민들이 최소한 아플 때 마음 놓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김민식ㆍ한영신학대 겸임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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