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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 욕설ㆍ협박ㆍ회유…"다시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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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 욕설ㆍ협박ㆍ회유…"다시 들어볼까"

입력
2006.03.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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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56ㆍ여)씨는 2002년 아들(29)이 치료 받았던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의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담뱃갑만한 녹음기를 구입했다. 코에 혹이 나 조직검사를 받던 아들이 출혈로 두 눈을 실명한 의료사고에 대해 담당의사가 계속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검사 당일 진료기록조차 없어 애를 태우던 차였다. 김씨는 “남의 말을 녹음하는 것은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의사에 대항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당시 조직검사를 하던 중이었다”는 진술을 녹음하는 데 성공한 김씨는 이를 법원에 제출, 현재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옷 가게를 하는 전모(34)씨는 지난해 2월 급전이 필요하다는 가게 주인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200만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주인은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것이 필요하냐”며 차용증 작성을 거부했다. 혹시나 싶었던 전씨는 휴대폰으로 통화내용을 녹음했고 나중에 발뺌하는 주인으로부터 무사히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상대방 몰래 대화를 녹취하는 것은 더 이상 기관원 같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녹취에 나서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느끼는 일반인들.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와 부동산 계약의 임차인은 물론, 이혼소송에서도 녹취록이 등장한다.

지난해 7월 코오롱 노조는 “정리해고된 노조원의 위원장 당선을 막기 위해 사측이 노조원들을 협박하고 회유했다”며 대화가 담긴 녹취내용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고, 2002년 모 지사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는 여성 피해자가 녹취한 대화 내용의 진위여부가 논란이 됐다.

관련 업체도 호황이다. 서울 서초동 D속기사무소 관계자는 “녹취 내용을 풀어 녹취록을 작성해달라는 의뢰가 과거 1주일에 1, 2건에 불과하다 요즘 들어 하루에 2, 3건씩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녹음기 전문 J쇼핑몰 김모(40) 대표는 “손목시계나 볼펜 안에 녹음기가 내장돼 있는 제품(일명 스파이더)의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고객 중 80% 가량은 은밀한 목적을 위해 구입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시민의식이 고양된 결과 또는 약자의 자구책으로 풀이한다.

양현아 서울대(법학과) 교수는 “무단 녹취는 사회적 약자(피해자)가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의존하는 증거확보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며 “유도심문, 편집 등 조작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만큼 객관적인 자료를 보강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도 큰 몫을 했다. 손목시계 볼펜 휴대폰 MP3 등 다양한 제품에 포함된 녹음기의 성능이 워낙 좋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녹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단 녹취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법원 관계자는 “주거침입 등 불법에 의한 방법이 아닌 한 통신비밀보호법상 당사자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취하고 공개하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으며 민ㆍ형사소송에서 검증을 거쳐 증거자료로 채택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몰래 녹취하는 것은 불법이며 당사자라도 녹취내용을 언론 등을 통해 공개할 경우 그 내용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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