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대표적인 명연주 ‘죽음과 소녀’의 DVD가 최근에 나오자마자 마니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영상에서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연주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눈에 보이는 기가 막힌 촬영기법들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오래 전 흑백 TV 시절에 카라얀이 위성중계된 일본 공연을 마치고 나서 “공연의 미래는 바로 이것이다. 수백명의 관객을 놓고 연주하던 문화가 이제는 전 세계인들에게 위성으로 각 가정까지 배달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유난히 마케팅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카라얀이기에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미디어 시대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견해였다.
클래식음악 시장에서 뮤직비디오는 반드시 함께 발전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로움으로 앞서가는 대중음악에 비하면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오래된 레이저디스크 영상이 이제야 DVD로 나온 것만 봐도 늦어도 한참 늦다.
연주자 네 명을 놓고 그들이 연주하는 장면을 녹화해서 보여준다면 당신 같으면 어떻게 촬영하겠는가? 예전의 수준은 먼저 악보를 분석하고 특정 부분마다 보여야 할 연주자를 보여주는 영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도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기에, 미리 배치해 놓은 몇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필름들을 연주자나 지휘자에게 자문을 구해 편집했고 그것이 한계점인 듯 했다.
이 DVD에서 보여주는 기법들은 이러한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 앉아서 연주하는 4명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가 10대 이상 동원되었고, 정지영상은 거의 없다. 줌인이나 줌아웃, 수평으로 이동하는 트래킹샷은 물론이고, 천정에 매달아 놓은 카메라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활을 잡은 연주자의 오른손을 따라 화면이 그네처럼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어떤 장면은 턱에 받친 악기가 안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해서 연주자의 표정만 찍거나, 심지어 벽에 비친 그림자만 찍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로 장난친 느낌은 전혀 없을 정도로 모든 부분이 그 음악에 적절하다. 멈춤 없이 한 번에 연주된 장면을 사전의 완벽한 기획과 준비로 촬영해서 또 하나의 예술을 높은 경지에 올린 것이다.
한 장르의 예술이 상품이 되기까지는 훨씬 많은 다른 장르의 예술과 협동해야 한다. 최고의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최고의 미술, 최고의 촬영, 최고의 기획, 그리고 최고의 마케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협동은 모든 예술가들이 해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의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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