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29일 3,000번째 ‘역’(驛)을 통과한다. 독일 원작 ‘리니에 1’(Linie 1)에 우리말과 정서를 입혀 1994년 5월14일 서울 동숭동 학전 소극장(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첫 출발한 이래 12년만이다.
그 동안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한 국내외 관객은 59만3,000여명. ‘승무원’으로 거쳐간 배우와 연주자는 188명에 이른다. 3,000번째 역에 도달하기까지 ‘지하철 1호선’은 부산 대전 등 국내 주요 역뿐만 아니라 독일 베를린과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을 두루 돌아 달려왔다.
3,000회라는 금자탑을 이루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열악한 국내 공연계의 풍토 때문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을 설계하고 운행을 총 지휘해온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는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가 2000년 1,000회 공연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2,000회를 기원한다고 한 말이 저주로 들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지하철 1호선’은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성과를 국내 공연계에 남겼다. 중국 옌벤 처녀 ‘선녀’의 눈을 통해 실직 가장, 가출 소녀, 잡상인 등 서울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는 ‘지하철 1호선’은 90년대의 시대상을 끌어안으며 장기 공연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라이브 밴드를 소극장 뮤지컬에 ‘승차’ 시킨 것도 국내에선 처음이다.
‘지하철 1호선’은 스타 등용문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설경구 황정민 등은 영화계의 기둥으로 성장했고, 조승우 배해선 문혜영은 국내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재목이 됐다. 초대 선녀역을 맡았던 나윤선은 대형 재즈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장기 공연은 미련한 짓이고 예술도 아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많은 연기 지망생들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줬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하철 1호선’을 90년대의 풍속화나 기록화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의 공황기였던 유럽의 60년대처럼 우리 사회의 90년대는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00년대의 사회상을 담을 수 있는 제2의 ‘지하철 1호선’을 기획 중이다. 95년 큰 실패를 본 ‘개똥이’를 전면 개작해 ‘날개만 있다면’(가제)으로 만들어 10월경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관객이 있는 한 ‘지하철 1호선’은 계속 달릴 것”이고 말했다.
극단 학전은 3,000회 공연을 ‘지하철 1호선’에 참여했던 기존 배우, 연주자와 함께 꾸밀 예정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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