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기사 A씨는 하루 밤을 꼬박 새워 일한다. 주말을 빼고 한 달 내내 쉬는 날 없이 일해서 손에 쥐는 돈은 60만원 정도라고 했다. 그는 ‘투잡(two job)족’이다.
낮에는 선배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 일한다. 잠은 언제 자는지 궁금했다. “일하는 틈틈이 눈을 붙이죠. 낮 일이 좀 헐렁하니까 할 수 있지 아무나 못해요.” 대리운전업체가 늘어나면서 요금인하 경쟁이 붙어 운전기사에게 떨어지는 몫도 그만큼 줄었다.
그는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낮에 버는 월 100만원 가량의 돈은 모두 아내에게 주고 밤에 번 돈은 ‘온전히’ 자기 생활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골초인 그는 아내에게 담뱃값 타 쓰는 게 고역이었다고 했다. 이런 생활에도 부인은 아무런 불평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돈을 갖다 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4살 된 딸아이가 아빠 곁에 오지 않는 것이 섭섭하다고 했다.
20대 후반의 A씨가 오늘 우리 사회 가장들의 평균적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이상 벌어들인 고소득자가 9만 6,500명에 달했지만, 월급 100만원도 못 받은 직장인은 무려 180만 8,000명이나 됐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상당부분 누락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때 이 통계는 그 실상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얼마 전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됐다. 부동산과 주식 시세차익, 상속 등으로 수십~수백억 원의 재산을 형성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서민들에겐 남의 얘기일 뿐이다. 모두 정당하게 일군 재산이라고 해명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재산형성의 속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부(富)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과연 그들의 능력만으로 그만한 재산을 일궜는가, 제도적 뒷받침 혹은 제도적 허점이 없었다면 가능했겠는가, 그 제도는 누가 만들었고 그들은 왜 그 허점은 고치지 않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이러한 질문들이 부의 정당성을 판가름할 근본적 잣대여야 한다.
부의 형성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니 뒤엎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재산은 오로지 사유(私有)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따라서 자신들의 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분배구조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현 정부 실세들은 무엇하고 있는가. 어느 새 감투를 썼다고 기득권 세력에 편입돼 그들과 같은 생각,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재야 운동권’에서 ‘필드 운동권’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골프광 국무총리는 상징적 사례다. A씨의 눈에는 그런 총리가 어떻게 비쳤을지 궁금하다.
가족이 사랑을 나눌 시간도 없이 밤낮 일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보다는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이 더 소중한 아내들, 그 속에서 아빠를 잃어가는 아이들. 이들에게 입만 열면 개혁을 말하는 현 집권세력은 무슨 답을 해줄 것인가.
김상철 사회부 차장대우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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