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전야의 고요함인가.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협상이 6일 양국 예비협의를 시작으로 본격 막이 올랐지만 정부 반응은 의외로 조용하다.
한미 FTA가 성사될 경우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시장개방이 될 것이며,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제2의 개항’이라는 요란한 평가를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다.
그것이 어려운 협상일수록 냉정하게 임해야 하는 협상원칙에 따른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나 반대 여론을 가능한 한 피해가려는 비밀주의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여론수렴 노력 안보여
한미 FTA가 어떤 협상인가. 국내만 보면 부실하나마 그나마 남아 있는 농산물의 대외 보호막을 사실상 모두 거둬내고, 세계 최강의 경쟁력으로 무장한 미국 전문가와 기업에게 금융, 법률, 의료, 교육 등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시장을 대폭 내줘야 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협상이다.
장기적으로는 개방의 고통이 취약한 국내 서비스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쓴 약이 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 만큼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FTA의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국민적 이해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해의 저변을 넓히고 여론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정부 주도로 지난달 2일 열린 공청회는 농민 시위로 무산됐지만 정부는 개최한 걸로 해석하고 다음날 바로 협상개시를 선언하는 성급함을 보였다.
이번 협상에서 어떤 분야가 주된 논의대상이 될 것이며, 개방으로 피해를 입을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설명 한 번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몇 차례 연설을 통해 한미 FTA를 추진하는 당위성과 성사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이 고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정부 차원에서 한미 FTA의 득실과 파장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가 유일하다. 모든 공청회나 토론에서도 이 보고서의 분석을 근거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뀔지도 모르는 변화에 대해 그 많은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이 보고서 한 장 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지난 1월에 나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는 한미 FTA가 성사되면 국내총생산(GDP)이 1.99% 증가한다고 밝혔으나 지난 3일 보고서에서는 GDP 증가율을 갑자기 7.75%로 높여 잡았다. 서비스업 개방으로 생산성이 1% 높아지는 것을 반영한 탓이라지만 가장 중요한 GDP 지표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니 보고서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반면 미국의 접근 방식은 우리와 너무 다르다. 협상 주체인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협상의 내용과 기본방침을 상세히 담은 협상 통보문을 보냈고, 기업과 국민을 상대로 한국에 요구할 사항을 수집하는 작업에 나섰다. 협상 내용 공개를 통해 이익단체나 의원들의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통상압력에 사용하는 것이다.
●결과통보 방식은 용납 안될 것
한미 FTA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도전이다. 따라서 협상을 위해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마땅하다. 정부 혼자 나서서 협상을 마무리짓고 그 뒤에야 협상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은 더 이상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민ㆍ관 협력을 무시한 채 비밀주의로 일관한다면 1999년 한일어업협정이나 2002년 한중 마늘협상 파동의 악몽을 되풀이할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한미FTA의 정확한 실체와 변화의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반대여론을 기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지름길을 찾지 말고 정면돌파를 해야 하는 법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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