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2000년 작 '메멘토'를 얼마 전 다시 보았다. 이미 대여섯 번쯤은 봐서 내용도 다 알고 몇몇 대사까지 외울 정도지만 여전히 시선을 고정시킬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매혹적인 영화다.
●문화주권을 논하는 시점에…
폭행으로 인한 뇌손상으로 10분의 기억밖에 유지할 수 없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응징하기 위해 추적해가는 과정이라는 내용만으로 보면 그다지 복잡한 플롯의 영화는 아닌 듯한데 그 구성은 대단히 지적이고 치밀하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복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 하지만 결국 그가 믿어왔던 기억의 진실들이 오히려 그 자신에 의해 왜곡된 것들이라는 놀라운 반전을 후반부에 제시함으로써 단순한 스릴러를 뛰어넘어 필름 느와르의 새로운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기억상실증의 남자가 자신의 삶의 목표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한다. 그리고 그는 10분 뒤면 그런 사실마저 잊어버린다. 그래서 설령 죄책감이 든다 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영화들이 기억상실에 대한 소재를 활용해왔지만 이처럼 재치있는 설정을 했던 영화는 드물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레너드가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동시에 우리들 마음속에 내재된 욕망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사실, 기억은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과 이미지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실체보다는 그 기억에 대한 우리들 자신의 태도에 의해 변형되고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너드의 기억처럼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작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가능한 축소해버리고 그 대신 간직하고픈 사실들을 요령껏 포장해서 마음에 담아두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기억을 조작한다'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영화를 빗대서 기억에 대한 단상을 하다보니 문득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는 기억의 유효 시간이 보편적으로 짧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휴대폰이나 인터넷의 기능에 중독된 우리들은 그 첨단 기술이 존재치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들이 없었던 시절에도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채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유행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이제 막 자리를 잡은 듯한 유행도 어느새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되어 버려진다.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들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기억을 재구성할 시간을 가지기는커녕 앞만 보고 달리기 바쁘다.
●영화는 '절대적 가치' 지녀
그렇게 달리다보니 판단력이 흐려지는 걸까. 스크린쿼터와 문화주권을 격렬하게 논하는 시점에 영화를 자동차 판매 실적과 결부시켜 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 멀지 않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영화는 문화로서의 가치가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잊고 싶다고 해도 잊을 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이윤기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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