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의 거취를 둘러싸고 여당에서 미묘한 힘겨루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동영 의장과 김근태 최고위원 등 재야파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 의장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총리의 사과는 국민 앞에 겸허한 자세를 밝힌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의원들의 개별적 의견개진을 자제하고 당이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총리의 입장표명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국민여론을 충분히 감안해 우리가 더 정신차리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과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대체로 이 총리 거취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이 총리의 낙마를 반기는 인상을 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실세총리’가 물러나면 대권주자인 정 의장과 당의 입지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는 인식이다. 일부 의원은 “지방선거를 제대로 치르려면 대통령이 이 총리의 사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근태계는 이 총리를 적극 엄호하고 있다. 재야파의 맏형 격인 장영달 의원은 “대통령의 일관된 국정운영을 위해 총리를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우원식 의원도 “5ㆍ31 지방선거가 다가오는데 후임 총리인선 때문에 혼란이 생기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김근태계의 한 당직자도 “문제의 인물들과 골프를 조건부로 친 것도 아닌데 사퇴하라는 것은 억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근태계는 이 총리를 지방선거 후 본격화할 대선 레이스에서 정동영계에 대항할 잠재적 아군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친노 직계 의원들도 이 총리의 사퇴에 부정적이다. 이광재 기획위원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 해외순방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후임총리를 둘러싼 물밑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동영, 김근태계를 대표해 김혁규, 김근태 두 최고위원의 이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혁규 최고위원 카드는 정동영계의 지원으로 지도부에 들어갔고, 후임총리가 필요할 경우 당 우위를 표방한 정 의장이 당 출신 인사를 추천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조심스럽게 힘을 얻고 있다. 김근태 총리설은 대선후보 관리 및 교통정리 차원에서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동영계의 한 핵심 의원은 “김 최고위원에 대한 청와대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 가능하겠냐”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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