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목에 깁스를 한 본사(포스코) 직원들과 엄청 싸웠지요.”
포스코 포항공장내 주석강판 생산 라인. 강판을 포스코의 주문 양식에 따라 일정크기로 잘라 포장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협력업체 ㈜만서기업의 박태근(40) 반장은 최근 “요즘에는 부딪힐 일이 없어요. 작업 지시도 우리가 하고, 불량품 때문에 문의를 하면 알아서 즉시 처리해줍니다.
예전 같은 거리감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정하 주임(42)이 절단기의 굉음을 뚫고 큰 소리로 거든다.“물론 임금이야 아직 좀 차이가 나지만, 최근 2년간 저쪽(포스코)은 동결되고 우리는 많이 올라 솔직히 돈은 더 바랄게 없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직원 109명을 거느린 이 업체의 2001년 평균 임금은 2,100만원. 하지만 2003년부터 뛰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3,300만원에 달했다. 3년만에 무려 50%가까이 상승한 것.
포스코 직원의 절반에 불과하던 임금도 이제는 거의 70%수준에 육박했다. 돈 뿐만이 아니다. 같은 공장에 있지만 협력업체가 쓴다는 이유로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했던 화장실도 호텔급으로 바뀌는 등 편의시설이 모두 개선됐다.‘ 협력업체 따로, 본사직원 따로’ 였던 통근 버스는 물론이고 탈의실도, 샤워장도 이제는 함께 이용하게 됐다.
협력업체 ㈜SM의 케이스는 더욱 극적이다. 포스코 포항공장의 배관펌프ㆍ회전기계 등을 정비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포스코 협력업체인 H기업으로부터 다시 일감을 받는 하청업체였다. 지난 10년간 H업체와 똑같은 일을 해 왔지만, 하청기업이라는 이유로 매출액의 15%가량을 떼줘야 했고, 포스코와 원청업체 양쪽의 이중 감독을 받아야 했다.
협력업체가 아닌 탓에 포스코가 실시하는 직원교육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임금이 가장 적은 데다 차별까지 느끼다 보니 직원들의 이직도 잦았고, 근무태도도 엉망이었다. 이 업체의 이석면(52)사장은 “포스코의 배려로 지난해 10월 협력업체가 되니 저보다 직원들이 더 좋아한다”며 “이제는 우리도 원가 절감이나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이 같은 상생경영을 돈 잘버는 기업(지난해 매출 21조원, 순이익 4조원)의 시혜적 차원으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무거운 인식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치밀한 분석과 미래를 미리 내다본 예측이 어우러진 결과로 봐야 한다.
현재 포스코의 생산라인은 전체인원의 절반 가량인 본사 직원(1만7,500여명)이 핵심파트를 맡고 있고,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협력업체 직원(1만7,500여명)이 정비ㆍ보수ㆍ폐기물 처리ㆍ제품포장 등을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한 가족으로 끌어안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품질 향상이나 글로벌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구택 회장은 2003년 취임하면서부터 협력업체를 ‘동반성장의 파트너’로 규정, 일찌감치 상생경영을 선도해 왔다.
포스코는 2007년까지 협력업체의 임금수준을 본사의 50%(2003년기준)에서 70%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소요 재원 2,700억원 가운데 절반은 지원하고, 나머지는 협력업체가 생산성 향상을 통해 흡수토록 하고 있다. 포스코는 또 협력업체의 다단계 하청구조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비해 하청업체들의 작업 편차가 심하고, 불량률이 높을 뿐더러 노사협력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포스코는 지난해 27개 하청업체를 9개로 통폐합, 협력업체로 승격시켜주는 등 기존의 하청업체 43곳 가운데 내화벽돌 부문(10곳)을 빼고 모두 없앴다.
이 같은 과감한 조치는 일터에 조용한 혁명을 몰고 왔다. “지시나 받고 시간이나 때우자”던 협력업체 직원들도 “큰집이 잘돼야 우리도 좋아진다”며 잔업과 시간외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이직률도 기존에 비해 5배 가량 뚝 떨어지고, 작업품질(안전관리ㆍ납기준수 등)은 5% 가량 좋아졌다. 포스코 포항 외주협력실의 박재갑 리더는 “상생 투자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처우개선 만큼 협력업체들이 생산성을 높이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이런 유형의 효과 외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포스코의 이미지가 높아진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대단한 성과”라고 강조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 포스코 전직원 70%가 봉사단 소속
포스코는 한국의 대표기업답게 사회공헌활동도 폭넓고 다양하다.
지난해 인재양성, 문화예술, 학술교육, 자원봉사, 체육 진흥 등을 지원하기 위해 808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급식소 운영, 자원재활용을 통한 이웃돕기 등 자원봉사활동도 활발하다.
포스코는 2003년 봉사단 설립이후 지난해 전직원의 70%가 315개의 봉사단에 소속돼 매월 1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했다. 또 매월 셋째 토요일을 ‘봉사의 날’로 정해 임직원 및 가족들이 직접 노력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나눔의 토요일’ 프로그램도 진행중이다.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자원봉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회사내 인트라넷에 온라인 시스템을 구축, 자원봉사 그룹 등록 및 조회, 봉사실적 입력관리, 봉사 수요처 정보 등을 제공한다. 또 자원봉사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 봉사활동 기준시간을 채운 임직원들에게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이구택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지속적인 발전이 이뤄지도록 하는 경영의 한 축”이라며 “포스코는 소외된 계층과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사회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 포스코의 상생경영에 초과근무도 기꺼이
“이것 보세요. 호텔화장실 못지 않죠.”
㈜만서기업의 채양도 사장(58ㆍ사진)은 포스코의 상생경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자, 대뜸 포스코 포항공장안에 있는 자기회사 화장실로 안내했다. 1990년대 후반 포스코에서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자재관리실장’까지 지냈지만, 당시에는 협력업체의 화장실을 고쳐줄 생각도 하지 못해 지저분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2001년 회사를 설립, 협력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뒤에는 직원들의 복지향상을 회사의 주요 목표로 삼았다. 특히 회사가 자리를 잡은 2003년 이후 때 마침 나온 포스코의 상생경영에 적극 호응, 직원들의 임금을 단계적으로 올려주는 동시에 투명 경영을 해오고 있다. 회사의 자금운영 상태와 경영성과도 매월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에 직원들도 화답했다. 냉연코일 제품포장 때 불필요한 코팅용지 사용을 없애자는 아이디어를 제출해 연 1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회사측이 직원복지를 위해 점심 반찬 값으로 내놓은 경비(연 3,000만원)도 스스로 줄이겠다고 나섰다. 채 사장은 “포장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근무시간(8시간)을 초과할 때에도 직원들이 불평없이 잘 따라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 포스코서 받은 혜택 청소년에 장학금
“이제는 어려운 이웃에게도 눈을 돌릴 생각입니다.”
포스코의 하청기업 폐지 정책으로 지난해 10월1일 협력업체로 승격된 ㈜SM의 이석면(52ㆍ사진) 사장은 “10년 동안 한결같이 고대해온 꿈이 이뤄져 지금도 감격스러움이 가시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사장은 하청업체 딱지를 떼자마자 포스코로부터 받은 ‘혜택’을 어떻게 갚을가를 놓고 고민했다.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등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만큼 가능한 것부터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우선 원청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일감을 딸 수 있게 되면서 매출액이 늘자, 직원들의 임금을 15% 일괄 인상했다.
두툼해진 월급 봉투에다, 포스코 직원과 나란히 정비교육까지 받게 된 직원들의 어깨도 한결 펴졌다. 이 사장은 “이익도 이익이지만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된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사원 복지수준도 조만간 다른 협력업체 수준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올 1월부터 금액은 많지 않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운 중ㆍ고고생 15명에게 월 5만원씩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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