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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 대화] (1) 율골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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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가상 인터뷰 대화] (1) 율골 이이

입력
2006.03.0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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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은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이름 이(珥)와 호 율곡(栗谷)의 사전적 의미는 각기‘귀걸이’와 ‘밤나무골’이다. 아버님은 사헌부 감찰을 지냈고 어머님은 유명한 사임당 신씨. 율곡은 덕수 이씨 13대손으로 12대손인 이순신과는 먼 친척 사이다. 이순신이 율곡의 19촌 아저씨 뻘이다.

사임당은 시서화에 모두 능했고 율곡에게 직접 사서를 가르쳤다. 새로 만들어진 5,000원권 뒷면의 수박과 맨드라미 그림은 사임당이 그렸다는 병풍그림‘조충도’에서 따온 것이다. 율곡은 모친상을 치른 뒤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 한 해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세상을 버리고 홀로 수양만 하는 것은 치인(治人)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율곡의 이러한 세계관은 사대부의 인격적, 도덕적 수양을 강조한 퇴계의 세계관과는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대조를 이룬다. 퇴계학파는 정치적으로 동인,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인과 연결되고, 율곡학파는 서인, 특히 노론과 연결된다.

율곡은‘성학집요’‘동호문답’‘격몽요결’등 많은 저작이 있고, 특히 임진왜란에 앞서 10만 양병을 주창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사실의 진위에 관해 학문적 다툼이 있다. 10만 양병설은 율곡학파 쪽에서 만든 문헌에 주로 의존하고 있어 신빙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재현(이하 현)=선생님, 요즘 새로 나온 5,000원권이 말썽이라 찾아 뵙게 됐습니다. 퇴계 선생을 제치고 5,000원권을 차지하고 계신데 왜 그리 됐는지를 먼저 설명해 주십시오.

율곡=허허, 일단 세종대왕께서 만원권에 등장하는 건 자네도 불만이 없을 테고, 아무튼 5,000원권이 나오기 전까지는 500원권이 최고액권이었네. 비중을 따지자면야 진짜 중요한 건 문묘에 배향된 순서인데, 그거야 퇴계 선생께서 나보다 먼저시라네. 그리고 돈 문제는 액수보다는 1,000원권이 더 많이 쓰이는 만큼 자주 뵙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100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장군 일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네.

현=제가 알기로는요, 원래 만원권부터 발행하기로 했는데 당시 디자인 소재가 불국사로 예정됐던 탓에 특정 종교를 우대하는 것이라는 시비가 벌어져그것이 취소되는 새에 5,000원권이 만원권보다 먼저 나오게 된 거랍니다.

율곡=1960년대 종이돈의 디자인 소재는 남대문, 독립문, 해금강 총석정, 첨성대, 거북선 등이었네. 종이돈에 사람 초상을 쓰는 건 위조 방지 때문에 그런 건데, 1972년에 5,000원권의 디자인과 제작을 영국에서 하는 바람에 최초의 내 얼굴은 서양인처럼 보였다네. 비난이‘움메나 빡시게’일어났었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현=선생님, 급하실 때는 강릉 사투리 쓰시네요. 그건 ‘얼마나 억세게’란 뜻이지요?

율곡=내가 살던 때까지도 아직 조선 사회는 혼례 풍속에서 친영(親迎)이 자리잡지 못했다네. 친영이란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예식을 올린 뒤 신부를 맞아서 신랑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그 당시까지도‘장가 가기’와‘처가 살이’가 일반적인 풍습이었어. 그 덕에 나는 강릉 외가에서 자랄 수 있었지.

현=그런데, 우리 돈에 이씨 성 가진 인물만 나온다든가 유학자만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원효나 지눌도 등장시켜야 한다든가, 아니면 더 근대적 인물로 안중근이나 유관순이 어떠냐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율곡=일본 종이돈에는 근대의 문화예술인, 사상가, 과학자들이 나온다네. 특히 여성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가 눈길을 끄네 그려. 또, 아직 통용되는 옛 종이돈에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남아 있지.

현=네, 모택동이 주로 등장하는 중국 돈이나 대통령들과 재무장관이 나오는 미국 돈보다는 일본 돈이 더 세련된 셈이네요. 앞으로 우리도 10만원권 발행할 때는 소설가 강경애나 화가 나혜석을 등장시키는 게 좋겠네요.

율곡=그런가? 나는 자네 취향이 임꺽정이나 홍길동 쪽인 줄로만 알고 있었네 그려, 뒷면에는 구월산과 율도국을 넣고 말이야. 아니면, 남북통일을 겨냥해서 단군은 어떻겠나. 그러고 보니 치우천왕이나 광개토왕도 좋겠고, 굳이 여성이라면 웅녀나 논개도 그럴 듯해 보이는군.

현=제 맘대로 해도 된다면, 당연히 이나영이나 문근영이지요. 이준기도 좋구요. 그나저나, 선생님, 새 얼굴에는 만족하십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새 5,000원권을 몇 번 접어서는 선생님 얼굴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들고 하면서 장난치며 놀던데요.

율곡=더 늙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네. 눈두덩도 더 들어가고 콧방울부터 입가까지의 법령 부분도 더 깊게 패인데다 수염도 더 굵고 진해져서 그런가 보이.

현=크기는 EU의 20유로와 비슷해서 일단 깔끔하고 모던한 맛이 나기는 하는데,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여전히 촌스럽다고들 하던데요.

율곡=그런데 자네는 날 만나서 돈 얘기만 하다 말 셈인가.

현(움찔)=그러시면요… 선생님의 현실 참여는… 에, 또… 제도 개혁 쪽에만 너무 치우치셨던 거 아닙니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 문제도 있는 건데요. 퇴계 선생은 학문 세계가 깊다고들 하지만 결국 향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에 그치신 셈이고, 반면 서인들은 당쟁 기간 동안 간헐적으로 잠깐씩 밀려난 경우를 빼놓고는 계속 정치에 관여했는데, 특히 사도세자 죽음 이후로 조선은 노론이 지배하는 사회였으니까, 결국 노론 세력이 나라를 망친 거 아닙니까?

율곡=동인과 서인 분당 시절 김효원과 심의겸을 모두 외관직으로 보내라고 주청한 이가 바로 나였네. 동인과 서인 두 정파의 다툼이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양쪽을 화합시키자는 주장도 했고, 또 붕당 정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네.

현=선생님이야말로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의 원조시네요. 제 귀에는 여전히 서인 편을 옹호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집권 사대부 집단은 실학파 사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허균 등은 사문난적으로 처형됐고요. 지주계급이자 정치적, 사상적 엘리트인 사대부들이 당쟁을 벌이느라 조선 사회를 망친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붕당정치론은 한국사 교과서의 대표적인 엉터리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 사학이 일제 식민지 사학 골대 앞에서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한 셈이지요.

율곡=나야 병조판서로 있을 적에 국방 정책을 시급하게 강조하면서 일부는 시행도 해보았는데 그것 때문에 거꾸로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밀려났었네. 당쟁은 워낙 구조적인 문제라 나 혼자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네.

현=10만 양병설의 진위는 무엇인가요? 70년대 초에 방위력 증강 사업에다 선생님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10만 양병설 때문인데요. 아무튼 90년대 초에 율곡사업 비리도 있고 해서, 무기 도입 등 국방 조달사업의 만성적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앞장서 올해 초 방위사업청을 출범시켰습니다마는.

율곡=내가 과연 10만 양병설을 주창했냐 아니냐가 초점이 돼서는 안되네. 나라의 위기를 내다보고 미리 방비를 해나가자던 태도가 중요한 거지. 정치 사상 면에서 내가 쭉 강조했던 것이 시의(時宜)와 경장(更張)이었네. 시대에 따라 때를 맞춰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고, 또 내가 살던 때는 개혁해야 할 폐단이 많은 그런 시기라고 보았던 걸세.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서는 무실(務實)을 강조했던 것이고.

현=조세제도나 관료제도는 지금도 큰 문제입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최근 청와대의 외교문서 유출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출세가 보장된 고급 외교관들이 정치 생명을 걸고 문서를 유출한 것도 당사자들로서는 그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길이라고 믿었던 거라 그랬던 게지요.

율곡=우리 때 도끼를 짊어지고 상소한 것과 비슷한 거라네. 조선을 망친 것은 사대부들의 소중화사상이었네. 연암이 막상 청나라에 가서 실제로 제 눈으로 보고 나서는 크게 놀라지 않았던가. 나는‘자주파’외교관들을 지지하네. 나머지들은 죄다 야심가 아니면 기회주의자라고 해야 하겠지. 한미동맹이 중요한 현실적 제약이고 일차 고려사항이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외교나 안보의 원칙이 될 수는 없는 거라네.

현=그렇군요, 자주를 원칙으로 하고 한미군사동맹 체제를 유연하게 활용해가면서 가급적 빨리 군비 축소를 해나가는 길이 굳이 세금을 따로 더 걷지 않고도 사회 양극화의 해소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네요.

율곡=요즘 인문학 쪽 지식인들은 신세 타령만 한 채 현실의 중요한 문제에는 관심의 끈을 놓고 있네. 경제라든가 한반도 주변 동북아 정세는 여전히 중요한 이슈인데 말이야.

현=역시 선생님다운 지적이십니다. 새 5,000원권을 볼 때마다 가르침을 되새겨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문답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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