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의 3ㆍ1절 골프파문을 계기로 ‘골프정치’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골프장 이용객이 1,800만 명이나 되듯 골프 자체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정치인들의 골프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골프 자체가 주는 재미보다 더 큰 ‘+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귀는 데 골프만한 게 없다고 의원들은 입을 모은다. 하긴 10여년 전부터 골프장은 요정 등 고급음식점, 계파보스 사무실 등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제2의 정치무대가 됐다. 오죽하면 오랜 외교관 생활에도 골프를 몰랐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주한미국대사시절 “한국에서 골프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권유에 늦깎이 골퍼가 됐을까. 문민정부 시절 미림팀이 골프카트에 도청장치를 달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골프를 치는 의원들은 “골프는 정치의 연장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골프가 얽히고 설킨 정치적 난제를 푸는 윤활유, 또는 인맥을 넓히는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계개편이나 대선 등 큰 정치적 분수령에선 으레 골프정치가 성행했다.
19990년 3당 합당의 단초가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골프회동에서 시작됐음은 이미 알려진 얘기다. 97년 DJP 연대의 물꼬도 96년 12월 당시 자민련 총재이던 JP가 광주에서 김인곤 전 의원 등 DJ 측근들과 5팀으로 어울린 골프회동에서 트였다. JP는 국민의 정부 시절 누구와 골프를 쳤는지가 주말 정가의 관심사였을 만큼 골프정치의 즐겼다.
골프를 정치적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하기는 17대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자 당에선 “김 의원이 매주 골프로 접촉한 의원들만 40~50명은 될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 원내대표도 지난해 경선에 대비해 6개월 넘게 매주 1, 2팀을 꾸려 의원들과 골프회동을 한 덕을 톡톡히 봤다.
중진들은 당내 선거는 물론 계파관리에도 골프를 적극 활용한다. 참여정부 관료출신 등 친노 직계들이 만든 일토삼목회만 해도 ‘매주 첫번째 토요일에 골프를 치며 친목을 도모하자’는 뜻이다. 2ㆍ18 우리당 경선에서 중립을 표방한 광장파가 지난달말 지방에서 세미나 겸 골프회동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의원외유에서도 골프는 빠지지 않는다.
의원들간 골프와 달리 이들이 외부인사와 치는 골프는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의 술자리 난동처럼 문제가 되지 않은 이상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의원들은 피감기관 또는 자신의 후원그룹 등과 골프를 치는 경우가 많은데 4인1조 플레이의 특성상 윤상림씨 사건처럼 브로커들이 끼어 들거나 정치자금 수수 등 비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4~5시간 함께 걷고 목욕은 물론 두 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지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기업 등이 의원들에게 로비를 위해 골프를 매개로 접근하기도 하지만 의원들이 후원회원, 동창회, 지역구 유지 등과의 골프 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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