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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은 도깨비 방망이, 주민의 꿈 척척 이뤄주죠"/ 골락마을살리기 '그린엔젤' 작전 마치고 주민과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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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은 도깨비 방망이, 주민의 꿈 척척 이뤄주죠"/ 골락마을살리기 '그린엔젤' 작전 마치고 주민과 잔치

입력
2006.03.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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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이라크 아르빌주의 작은 마을 골락에 잔치가 벌어졌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마을에는 태극문양과 이라크 국기로 페이스페인팅을 한 꼬마들의 노랫소리와 거무스레한 얼굴에 구렛나룻을 기른 아랍 사람들이 질러대는 함성으로 왁자지껄했다.

마을 공터 한복판에서는 줄다리기와 씨름판이 벌어졌고 공터 한켠에 마련된 먹거리 장터에는 호떡과 솜사탕 맛을 보려는 쿠르드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는 이 마을에서 전개했던 그린엔젤 작전을 마감하면서 주민들과 화합하는 의미로 잔치를 마련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왔다는 그린엔젤 작전은 순회진료와 환경개선 사업 등을 통해 이라크의 재건을 돕는 자이툰 부대의 주요한 활동이다.

골락에서는 자이툰 부대 11민사여단 1개 대대가 지난달 5일부터 19일간 투입돼 초등학교 시설을 개선해 주고 마을 오ㆍ폐수 처리 시설을 만들어 줬다.

마을은 널따란 구릉지대에 오아시스처럼 떠 있었다. 멀리서는 한가롭게만 보였지만 마을을 둘러싸고 군데군데 장갑차가 배치돼 있고 중무장한 자이툰 부대 장병들이 경계를 펴고 있는 장면에선 전장이라는 실감이 났다.

임국선 11민사여단장(육군 준장)은 “아르빌 지역은 대체로 안전한 편이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작전하는 동안은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작은 학교건물이 ‘골락초등학교입니다. 방문단을 환영합니다’는 한글로 된 플래카드를 달고 낯선 이방인들을 반겼다.

운동장에서는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엄마 곰, 아기 곰”하는 아이들의 세찬 노랫소리가 가득했다. 자이툰 부대가 작전을 하기 전까지는 칠판은 물론이고 놀이시설도 하나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학교라는 설명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카마란(39) 교장은 며 “필요한 물품 목록을 적어 놓으면 자이툰 부대가 바로 다음 날 도깨비처럼 나타나 선물더미를 안겨준다”며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자이툰 부대가 고맙다”고 말했다.

마을은 우리의 1960, 70년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흙 벽돌로 지은 집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고 마을 곳곳에서는 가난의 찌든 때가 묻어났다.

잔치가 벌어진 마을 공터는 오ㆍ폐수가 사방으로 흘러 오리떼의 놀이터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했다. 자이툰 부대는 수십대 트럭분의 흙으로 평탄작업을 하고 땅 밑으로는 하수로를 만들었다.

임 준장은 “처음에는 팔짱만 끼고 있던 주민들이 열흘쯤 지나자 자이툰 부대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날 잔치는 역설적이게도 도움을 베푼 쪽에서 마련했지만 ‘쿠르드인의 자활’이라는 그린엔젤 작전의 본래 목적이 100% 달성됐다는 자이툰 부대의 자축이 담겨 있다.

자이툰 부대는 그린엔젤 작전이나 영내 자이툰병원, ‘쿠르드 어학교실’ 등을 통해 이라크의 재건과 평화를 돕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베푸는 식의 활동은 지양한다.

자이툰 부대가 뿌려놓은 씨앗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현지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현지인들에게 각종 기계와 컴퓨터 교육을 시키는 ‘자이툰 기술교육 센터’도 그런 목적으로 세웠다.

정승조 사단장은 “제한된 지원자금으로 무한정의 시혜를 베풀 수는 없다”며 “쿠르드인들에게 고기 대신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아르빌(이라크)=김정곤 기자 jkkim@hk.co.kr

■ 마을 지도자 사비르 오스만 "희망 배워…한국과 교류 지속되길"

이라크의 마을 지도자는 ‘무크타르’로 불린다. 골락 마을의 무크카르는 사비르 오스만(63ㆍ사진)씨. 그는 “쿠르드 정부에서조차 하지 못한 일을 자이툰 부대가 해주고 있다”며 “자이툰 부대는 우리도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쳐 줬다”고 했다.

자이툰 부대가 올해 말까지 1,000명 감축된다는 소식에는 “바그다드와 달리 여기는 뉴욕이나 서울보다 더 안전하다”며 “주둔을 연장할 방법은 없느냐”고 되물었다.

골락 마을의 100여가구 주민 300여명은 대부분 밀경작과 양치기에 매달리고 있지만 근근히 연명만 할 정도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폭정에 시달린 다른 쿠르드지역처럼 무엇하나 풍족한 것이 없다.

주민들은 자이툰 부대가 주는 비누 담요 한 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연신 손을 내밀었다.

오스만씨는 “흙 벽돌로 된 집을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것으로 바꿔 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과 협력이 지속되면 좋겠다”는 소원을 털어놓았다.

마을 한 가운데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운동장 한켠에 마련된 자이툰 부대 순회진료 천막 앞에는 쿠르드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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